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의료복지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분야가 바이오헬스산업”이라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의료복지 등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분야가 바이오헬스산업”이라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남짓 지났지만 미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한 세부 청사진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국정운영계획 등을 통해 연구개발 투자와 세제 지원 확대, 전문인력 양성, 국제 기준에 맞는 합리적 규제 등을 밝힌 게 전부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련 부처가 마련 중인 세부 정책안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유전체 분석기업 마크로젠 창업자이자 서울대 의대 교수인 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은 민간 전문가들에게서 정책 해법을 찾을 것을 주문했다. 서 회장은 “국내 바이오산업이 궤도에 오른 만큼 산업계에 몸담고 있는 민간 전문가그룹의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국내 바이오벤처 1세대로 업계를 이끌고 있는 그를 만나 한국 바이오산업의 현주소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K바이오 프런티어] "4차 산업혁명·일자리·복지 다 잡을 수 있는 산업이 바이오헬스"
▷국산 바이오의약품이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내 바이오산업계는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램시마’로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어요. 코오롱생명과학은 세계 최초로 유전자치료제 인보사를 개발했습니다. 국내 업체들이 세운 ‘세계 최초’ 기록들입니다. ‘세계 최대’ 기록도 만들고 있어요. 송도는 단일 도시 기준으로 세계 최대 바이오 의약품 생산지가 됐습니다. 마크로젠은 유전체 분석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죠. 새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주목하고 육성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세계 시장 전망도 밝습니다. 의료서비스 시장은 지난해 7조200억달러에서 2025년 12조4783억달러로 연평균 6.6% 성장하고 의약품 시장은 같은 기간 1조1385억달러에서 1조3918억달러로 연평균 4.1%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의료기기 시장도 3905억달러에서 4890억달러로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한국이 세계 바이오헬스산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더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은데요.

“새 정부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을 중요한 기조로 하고 있습니다. 관건은 복지와 반대편에 있는 개발(성장)을 어떻게 엮느냐죠. 아마도 해답은 바이오헬스산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바이오는 복지와 개발이라는 상반된 정책 목표가 융합되면서 지속가능한 산업입니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노인 인구와 인구절벽, 의료비용 상승은 세계 국가들이 직면한 시급한 문제입니다. 바이오헬스산업은 새로운 먹거리인 동시에 의료 서비스 질을 높여 복지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의료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산업입니다.”

▷바이오헬스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무엇인가요.

“유전체 정보, 병원의 전자차트 등 산재해 있는 데이터입니다. 이들을 빅데이터로 끌어모으면 다양한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각종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개인의 질병 예측까지 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병에 걸려 치료하기보다 사전에 예방한다면 의료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죠. 세계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의료재정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국민들의 삶의 질도 자연히 높아지게 될 겁니다. 의료 패러다임이 예방의학으로 가야 하는 이유죠.”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됩니까.

“예방의학은 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걸 의미합니다. 가령 유전자 검사 결과 폐가 잠재적으로 나빠질 것으로 나오면 공기 좋은 곳으로 거처를 옮겨 재택근무를 하는 조치를 미리 취할 수 있습니다. 사전 조치로 질환 자체를 막거나 늦출 수 있게 된다는 얘기죠. 예방의학으로 가면 의료비를 지금보다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1980년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어요. 세계 의료산업을 송두리째 장악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고 보면 됩니다.”

▷게놈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승산이 있나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1월 국정연설에서 정밀의료 시대를 선언했습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0세로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했죠. 2000년 6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성공을 발표한 지 꼭 15년 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게놈 프로젝트는 백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인종 간 차이가 없다고 봤지만 그렇지 않아요.

아시아인 게놈 지도는 마크로젠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2001년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발표했고 지난해 완성했습니다. (세계적 권위의 과학 전문지 네이처는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인간 게놈 지도라고 극찬했다) 아시아인은 아시아인의 게놈 정보를 사용해야 합니다. 45억 명 인구의 아시아 시장만 공략해도 미래 가능성은 엄청날 겁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어느 정도로 평가합니까.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바이오헬스산업을 꽃피울 수 있는 준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우선 의료 분야에 우수한 인재가 많습니다. 한국에는 의료 분야의 글로벌 표준이라고 할 미국식 교육을 받은 의사 10만 명이 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술(IT)을 갖추고 있어 빅데이터를 접목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시스템 구축이 가능합니다. 한국은 병원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이 세계 1위입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오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죠. 버튼만 누르면 글로벌 바이오헬스산업 강국으로 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지금은 4차 산업혁명 태동기입니다. 정부는 큰 틀에서 바이오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국내 바이오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민간 전문가그룹의 집단지성을 모아 정책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오 정책을 2년 주기로 바뀌는 비(非)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곤란하죠. 오바마 정부가 집권 초기 각계 전문가를 한데 모아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짠 것은 벤치마킹할 만하다고 봅니다.”

▷새 정부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는 어떤 게 있을까요.

“새롭게 떠오르는 유전체 및 체외진단 분야입니다. 산업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이런 산업이 클 수 있습니다. 의료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규제 때문에 막혀 있는데 이것도 풀어야 합니다. 이래서는 디지털 의료산업이 클 수 없습니다. 미국은 의료데이터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고 여러 병원의 임상정보를 별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놓았습니다. 이를 활용한 창업도 활발합니다.

줄기세포 연구조차 막고 있는 생명윤리법 개정도 검토해야 합니다. 선진국처럼 새로운 분야에는 규제를 없애 산업 성장을 먼저 유도하고 이후 시장상황에 맞게 규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10만 명의 데이터사이언티스트도 양성해야 합니다. 의사들이 바이오헬스·의료 정보를 다루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의 도움을 받아 진료하는 시대가 머지않았습니다. 데이터 처리 능력이 바이오헬스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겁니다.”

서정선 회장은
△1952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 의대 교수
△한국유전체학회 회장
△대한생화학분자생물학회 회장
△공우생명정보재단 이사장
△서울대 의학연구원 유전체의학연구소 소장
△한국바이오협회 회장(현)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