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등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의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한 50차 공판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엔 핵심 피고인인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오른쪽)이 피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등 삼성그룹 주요 경영진의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한 50차 공판이 2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엔 핵심 피고인인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오른쪽)이 피고인으로 출석해 증언했다. 연합뉴스
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혐의에 대한 50차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는 새벽부터 몰려든 방청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삼성그룹 경영진 뇌물죄’의 핵심 피고인인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공판 시작 후 5개월여 만에 처음 법정 증언을 하는 날이었다.

공판 시작 시각은 오전 10시였지만 선착순으로 74명에게 배정되는 방청권은 오전 7시를 넘기자 일찌감치 마감됐다.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장담한 박영수 특별검사의 말처럼 월스트리트저널, AFP,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 기자들도 방청석을 채웠다.

삼성물산 합병, 누가 주도했나

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 합병, 미래전략실과 계열사가 결정"
공판은 최 전 부회장에 대한 특검 측 신문으로 시작됐다. 질문과 답변이 오갈 때마다 특검과 이 부회장, 최 전 부회장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 부회장은 특검의 쏟아지는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망설임 없이 증언했다. 본인 의견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지난해 12월 국정조사 청문회 당시와 딴판이었다. 최 전 부회장이 발언할 때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과거 변호인과 의견을 나누거나 간간이 웃던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핵심 쟁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승마훈련 지원 등 특검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주장하는 거래에 대한 이 부회장 개입 여부였다. 이 부회장은 양사 합병에 대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반대하고 나섰을 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을 제로베이스(원점)에서 다시 검토하자는 건의를 최 전 부회장에게 했다”며 “하지만 최 전 부회장이 그래도 추진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냥 따랐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내부 회의에서 합병안 자체를 반대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엘리엇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악랄한 벌처펀드로 들었는데, 우리 경영진이 시간을 뺏길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했었다”며 “(내가 잘 아는) 전자업종 같았으면 더 확실하게 (합병 반대) 이야기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 같은 진술을 하기에 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서 하는 사업은 내가 지식도 없고 업계 경향도 모른다”며 “양사 합병은 해당 회사 사장들하고 미래전략실에서 알아서 다 한 일”이라고 말했다.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 아니냐는 특검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함부로 개입할 것도 아니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해줬다”며 “당시 기억으로는 엘리엇 사태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던 걸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최 전 부회장도 이 부회장에 앞서 신문을 받으면서 “당시 삼성물산 자사주를 (백기사인) KCC에 매각한 것에 대해 이 부회장은 시민단체 등 반대 여론이 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의견을 강하게 밝혔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삼성그룹과 미래전략실에서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묻는 특검 질문엔 “한 번도 미래전략실에 소속된 적이 없다”며 “전체 업무의 95%는 전자 계열사 관련 업무였다”고 답했다.

“삼성전자 외 계열사 일엔 관여 안해”

그룹 계열사들의 합병 및 매각과 같은 사업 재편에 대한 자신의 관여도를 묻는 특검 측 질문에도 “미래전략실 최 전 부회장과 김종중 사장 등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화학계열사 매각, 반도체 신규 투자 건과 같은 현안에 대해 정보를 알려주고 의견을 물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전자업종 외에는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거의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이었다”고 대답했다.

이어 “삼성전자 외에 화학산업, 금융업, 건설업 등에 대해서는 업무 지식과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자신이 주도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일관되게 뒷받침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뇌물죄의 핵심인 정씨 승마훈련 지원 여부는 당시 이 부회장이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는 증언들이 나왔다. 최 전 부회장은 “(2015년 8월) 삼성이 정씨를 지원하기로 한 결정은 나중에 특혜 시비 등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2016년 6월까지) 이 부회장에게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며 “나중에 이 사실이 구설에 오르는 등 문제가 되면 이미 (삼성에서) 40년을 근무한 내가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정씨를 부당하게 지원한 책임은 이 부회장이 아니라 본인에게 있다는 의미다.

좌동욱/고윤상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