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성을 생명으로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할 법원이 납득하기 어려운 실수로 재판을 번복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심과 2심에서 재판부가 연달아 실수해 대법원이 바로잡은 상상하기 힘든 일도 발생했다. 일회성의 단순 실수로 보기에는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가 많다. 재판 파행으로 인한 피해도 재판 당사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2심까지 끝난 판결, 처음부터 다시하라고?
◆고민 없는 기계적 판결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남편을 흉기로 상습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형사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이유는 판결 자체에 대한 법리적인 의문 때문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관할에 대한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판사 3명으로 구성된 합의부 재판부가 맡아야 할 형사 사건을 판사 1명이 담당하는 단독 재판부가 처리한 것이다. 1, 2심이 기초적인 관할 판단을 제대로 못 해 선고까지 했다가 대법원의 지적에 따라 처음부터 재판을 다시 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심 선고 이후까지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으로 전해진다.

법원의 어이없는 실수는 종종 나온다. 작년 8월에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이 합의부에 배당해야 할 성매수 사건을 단독판사에게 잘못 맡겼다가 항소심에서 원심이 파기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건 배당 단계에서 실수가 나온 뒤 이를 발견하지 못해 일어난 잘못들”이라며 “요즘은 전자 방식으로 사건을 배당해 관리하기 때문에 관할 위반이 발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 변호사는 “피고의 실수엔 엄격하면서 법원이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면 판결에 권위가 제대로 설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통상적인 ‘무작위 전산 배당’과 사건에 대한 ‘기계적인 판결’이 근본적인 문제”라며 “전산 배당이 아니라 스스로 판사들이 계획서 제출 등을 통해 맡고 싶은 사건을 정하는 등의 보완책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검찰 실수도 수두룩

검찰의 실수도 법원 못지않다. 광주지방법원 형사2부는 지난 9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모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원심을 깨고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법령을 잘못 적용해 높은 형량을 선고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원심은 법령 적용 실수로 금고형 대신 징역형을 선고했고, 이에 피고인은 2심 판결 전까지 징역을 살았다. 이 과정에서 검사조차 구형을 징역형으로 내려 ‘황당 실수 콤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항소심에서 보석 결정을 받은 피고인에 대한 통보를 늦게 해 피고인이 구치소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머무른 황당한 사건도 2건 발생했다. 당시 추석 연휴가 껴있어 재판부가 날짜 계산을 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판·검사의 실수 아닌 실수는 적절한 배상도 이뤄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당사자들이 감당하게 된다. 일부 피고인들은 하소연은커녕 불이익을 우려해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그대로 재판 절차를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판결 등에 따르면 법관이 법령의 규정 등을 잘못 이해해도 그 재판상 직무행위가 곧바로 국가배상책임이 되진 않는다. 책임이 인정되기 위해선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이상엽/고윤상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