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정오께 이화여대 앞 상가. '신발 균일가 5900원' '전품목 50%' 등 대문짝만 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조아라 기자
17일 정오께 이화여대 앞 상가. '신발 균일가 5900원' '전품목 50%' 등 대문짝만 한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조아라 기자
"양말 10켤레 골랐어요. 그냥 부담 없으니까 사는 거죠."

지난 13일 오후 6시께 연세대 인근에서 만난 권은지 씨(22)는 가게 앞 판매대에 진열된 양말 더미를 뒤적여 양말 10켤레를 골랐다. 값은 5500원. 권 씨는 "양말 한 켤레에 550원이니 싸다. 계속 신을 거니까 샀는데 품질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옆 코너에서 파는 면 티셔츠는 3장에 1만2000원, 민소매 티셔츠도 3장에 1만 원이었다. 티셔츠 하나에 채 5000원이 안 되는 '착한 가격'으로 어필했다. 올 초만 해도 브랜드 신발 매장이 있었던 곳인데 저가 의류 매장이 들어섰다.

17일 정오께 이화여대 앞. 약 200m 거리의 이대 상권 곳곳에는 '신발 균일가 5900원' '전품목 50%' 등 대문짝만한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액세서리·신발·의복 따위를 파는 전문점이다.

대학가의 기존 화장품 전문점, 인형 뽑기방 등이 실속형 잡화점으로 바뀌고 있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브랜드 매장 대신 저렴한 가게들이 들어서는 추세가 확연하다.
얼마 전까지 인형 뽑기방이 있었던 곳. 사진=조아라 기자
얼마 전까지 인형 뽑기방이 있었던 곳. 사진=조아라 기자
특히 10~20대 젊은 소비층을 겨냥한 대학가 상권의 초저가 전략이 눈에 띈다. 깔끔한 매장 인테리어에 대부분 '50% 세일' 등 문구를 앞세워 손님몰이를 하고 있었다. 지갑이 얇아진 대학가 소비층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간 20대 소비 여력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소비 구조의 특징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2016년) 연령별 소비지출 증가율은 20대 이하 가구주 가계가 –4.4%로 가장 부진했다. 앞선 5년간(2007~2011년) 0.2%였다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20대가 벌어들이는 소득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0대 이하 가구주 가계의 실질 근로소득 증가율 역시 최근 5년간 -7%를 기록했다. 극심한 취업난에 앞선 5년간(-1.3%)보다 크게 하락한 수치다.

구매 욕구는 있지만 제한적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젊은층이 실속형 저가 매장을 찾는다는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경제력은 떨어지지만 물건의 소비 경험은 많다"면서 "부담이 덜한 저가 매장에서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느낀다. 하나의 놀이 공간으로 여기는 셈 "이라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과 괜찮은 품질을 찾는 이른바 '가치소비' 성향이다. 이 교수는 "저가형 매장의 상품 질도 나쁘지 않고 꾸준히 다양성을 추구하는 소비자 본능 때문에 수요가 있을 것"이라면서 "대학가에 경제 형편에 맞춰 다양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저가형 매장이 늘어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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