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반대 메시지 던졌으면 편법 승계 시도 못했을 것"
"이재용, 새로운 사업서 성공해 경영능력 인정받아야 승계 완성"


'삼성 저격수'로 불린 경제학자 출신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4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해 "미래전략실 기획하에 결정이 이뤄지고 집행된 승계 시나리오의 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일 대통령이 편법 승계에 반대한다는 입장만 표명했어도 삼성 측이 편법 승계는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와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특검팀이 "이재용은 삼성합병이나 지주사 전환이 승계 작업과는 무관하고 계열사의 경영상 판단이라고 주장한다"고 말하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합병이나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을 해당 회사 이사회가 결정할 권한이 없었을 것"이라며 "미래전략실 기획하에 결정이 이뤄지고 집행된 승계 시나리오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삼성그룹 출자구조는 국내외 변화에 따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매우 취약한 구조"라며 "삼성은 출자구조나 승계구도를 안정화하기 위한 추가 작업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대통령의 메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시장을 감독하는 금융위나 공정위에는 광범위한 재량권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면서 "금융위나 공정위의 법 집행에서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굉장히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검팀이 "대통령이 '부의 편법 승계에 반대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입장만 표명해도 삼성이 편법적 승계는 시도도 못 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라고 묻자 그는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김 위원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삼성 내 의사결정은 이 부회장과 미전실 최지성 전 실장, 장충기 전 차장, 김종중 전략팀장 등 4인 집단 체제로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얘기는 김종중 팀장을 통해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해체된 삼성 미전실에 대해서는 '커튼 뒤에 숨은 조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은 외형적으로는 이사회나 주주총회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지만 모든 게 사전에 미전실에서 취합되고 결정되는 조직"이라며 "이름이 계속 바뀌기는 했으나 미전실 기능은 언제나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이런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비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이 부회장을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과 비교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려면 새로운 사업에서 성공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이 정의선을 기아차 사장으로 임명하고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 기아차를 회생시켰다.

정의선의 능력에 대해 시장에서는 의구심이 거의 없다"며 "그에 비하면 삼성이나 이건희 회장은 이재용에게 경영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게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 삼성이 어려운 이유는 이재용을 둘러싼 미전실, 참모실이 잘못된 정보를 전하고 불법적인 걸 만들어주려 했고 그걸 끊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재용이 자유 신분이 돼 경영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겠다고 하면 이재용과 삼성, 한국경제 모두에 긍정적인 결과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황재하 기자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