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SKY'로 불리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캠퍼스. / 사진=한경 DB
(왼쪽부터) 'SKY'로 불리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캠퍼스. / 사진=한경 DB
"입사지원서 전자우편 기재란에 '@yonsei.ac.kr'라고 적는 건 어때요?" "주소를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무악학사라고 쓰면 특정됩니다." "스누풀(서울대 수영동아리) 같은 동아리명을 쓰면 되지 않을까요."

지원자 학력 등 각종 스펙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서 명문대생들 사이에서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들 대학의 학생 커뮤니티에는 불만이 쏟아졌다. 학벌도 노력의 결과물로 볼 수 있는데 무조건 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 "명문대 입학도 실력, 블라인드 채용은 역차별"

불만은 "우회적으로 출신 대학을 기재하자"는 제안으로 이어졌다. 지원서의 전자우편 기입란에 학교명이 들어간 메일 주소를 적는다거나, 주소 기입란에 학교 기숙사를 쓴다거나 하는 식이다. 은연중에 출신 대학을 알 수 있게끔 암시하자는 것이다.

초·중·고교 12년간 성실하게 공부하고 학교생활을 한 대가로 간주되는 '대학 간판'의 이점이 사라지는 데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한 연세대 재학생은 "입사지원서 '직무 관련 내용'에 학점을 쓸 수 있지만 (블라인드 채용에서는) 모든 대학 학점을 똑같이 보지 않겠느냐. 대학마다 수준 차이가 있는데, 이럴 거면 아예 학점도 못 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서도 "무섭다. 앞으로 지방대 할당이 더 늘어나고 공기업 승진에도 지방대 비율 채우라는 지시 떨어지는 게 아니냐" "장애인, 국가유공자면 몰라도 왜 지방대생을 우대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정부가 블라인드 채용을 추진하면서 '지역인재 채용 대상자'의 경우 예외적으로 최종 학교 소재지 기재가 허용되는 점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연세대 졸업생 이모 씨(28)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식당 장사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뒤로 하고 서울로 대학을 왔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현행 지역인재 채용 규정이 담긴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혁신도시법)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해도 대학을 다른 지역에서 다녔다면 지역인재 채용할당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역인재'를 '공공기관 본사가 이전한 지역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최종 학교를 졸업한 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신규 채용 인원의 30% 이상을 지역인재로 채용토록 했는데, 예를 들어 전남 나주에 본사가 위치한 한국전력공사가 직원 10명을 뽑을 때 최소 3명은 전남 지역 대학 졸업자로 채용하라는 내용이다.

◆ "길게 봐야… 지방자립·수도권 집중 완화 필요"

극단적으로 비교하면 지역 출신의 서울 소재 명문대생과 서울 출신의 지방대생 가운데 후자가 '지역인재'로 인정받아 제도상 혜택을 받는 맹점이 있다.

그러나 지방대생들은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 방침을 반기는 분위기다. 학력 등 편견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았다.

충남 소재 대학의 재학생 조모 씨(23)는 "학벌보다 능력을 보고 뽑겠다는 취지다. 공정한 기회의 확대에 적극 찬성한다"고 했다. 같은 대학 김모 씨(23)도 "출신 대학 등 편견으로 지원자를 배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각종 인프라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해결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균형발전을 하려면 장기적 관점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상민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큰 방향성은 지방 자립, 수도권 편중 완화다. 단 블라인드 채용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과 판단 등은 논란이 일 수 있어 세심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블라인드 채용의 형평성을 두고 당분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전자우편 등 학력을 암시하는 기재 행위에 대해 "평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 무의미한 행위"라고 말했다. 고용부는 이달 중으로 블라인드 채용 관련 유의사항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배포할 예정이다. 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을 공공 부문부터 도입한 뒤 민간 기업으로의 확산을 유도해나가기로 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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