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네이버 FARM] "작두콩 내가 들여왔지" 국내 대표 임업 멘토 된 50년 산야초 농부
충남 공주시 신풍면에 있는 황금약초식물원. 6만여평(19만8000㎡) 산에서 700여 그루 나무와 100여종 약초가 자라고 있다. 이 산골에 둘째주와 넷째주 토요일이면 30여명의 수강생들이 모여든다. 정년을 앞둔 대학 교수, 농업기술센터 소장, 동네 면사무소장, 학교 교장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곳 이기범 원장(71)의 약초 강의를 듣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50년간 산야초 재배 외길을 걸어온 농민이다. 2004년 행정자치부 선정 신지식농업인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임업진흥원은 그를 약용류 분야 임업 멘토로 위촉했다. 그의 강의는 하루에 4시간 진행된다. 15주 진행되는 이 강의의 수강료는 15만원. 약초 종자를 무료로 분양하고, 다양한 산야초를 함께 곁들이는 점심식사까지 포함된 가격이다. 사실상 무료 교육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1995년부터 헛개나무 재배를 시작한 1세대 헛개나무 생산자이며 1996년엔 비염에 좋다는 작두콩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기도 한 이 원장이 귀농인 교육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는 뭘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100세 시대…“행복한 노후를 돕고 싶다”

이 원장이 귀농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본격 시작한 것은 7~8년 전부터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자들의 건강과 행복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던 시기다. “행복한 노후를 즐기기 위해선 본인의 건강이 가장 중요한 거여.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다 의사에게 가져다줄 수 없잖여. 귀농허는 사람들이 약초를 재배하면 본인의 건강을 일단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혔지. 그래서 교육을 시작한 거여. 판매는 두번째 문제라고 생각혔고.”

교육을 처음 시작할 무렵엔 사람이 찾아오면 일을 하다가도 산에서 내려와 상담을 했다. 교육 수요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올 때마다 상담을 해주는 게 어려워졌다. 그래서 15강으로 구성된 7개월짜리 교육코스를 만들었다.
이 원장은 15번의 강의 시간동안 본초학 미생물학 발효학 등도 다룬다. 약초류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부터 미생물 비료 제조법 등 종합적인 내용까지 강의에 담았다. 올해는 3월에 시작해 오는 10월까지 강의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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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미생물을 공부하면 자체적으로 비료를 개발할 수 있고 이는 원가 절감으로 이어진다”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식물원에서 직접 진행하는 강의 외에도 부여군 평생교육원, 산림 아카데미 등에서도 정기적으로 강의를 한다.

수강생들에게 약초 모종과 종자는 무상으로 분양한다. 지난해에는 페루의 산삼이라고 불리는 마카 모종을 나눠줬다. 이 원장은 “약초 재배법과 효능에 대해 먼저 공부한 사람으로서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도전과 실패에서 배운 노하우들을 나누고 있다”고 했다.

◆술병 치료를 위해 키웠던 헛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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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의 말처럼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의 인생 모토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한다’다. 가훈은 멀리 내다보고 생각한다는 뜻의 ‘원념(遠念)’이다.

이 두가지 원칙은 이 원장의 인생사를 축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1967년 예산농업전문학교 농업과를 졸업한 후 1970년부터 약초 재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재배한 약초를 한약방에 팔았다.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그는 한약방에 미래가 별로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반 병원에 가면 약에 물리치료비까지 해서 5000원도 안되는데 보약 중에 5000원 미만인 게 별로 없는 걸 보니 경쟁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부터 임산물을 직접 식품화해서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밤나무를 심었다. 인건비 대비 효율이 안나왔다. 두 번째 도전은 두충이라는 약초나무. 재배에는 성공했지만 이번엔 중국산 공습으로 무너졌다.

세 번째 도전은 헛개나무였다. 1995년 무렵이었다. 이 원장은 원래 헛개를 주력 작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간이 상했어. 간에 좋은 게 뭐가 있을까 본초강목을 뒤져보니 ‘지구자’라는 게 나오더라고. 지구자가 바로 헛개의 열매야.” 이 원장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두충나무 옆에 헛개나무를 몇그루 심고, 강원도에 사는 지인에게서 받은 야생 헛개열매를 달인 물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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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점차 좋아지는 게 느껴지더라고. 사업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는 과감히 밤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1만5000 그루의 헛개나무를 심었다. 여름에 피는 꽃에선 꿀을 추출해 팔고 가을에 수확하는 열매는 진액으로 만들어 팔았다. 성목으로 자란 700여그루의 나무는 한 때 한 그루당 150만원의 매출을 이 원장에게 안겨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1990년대 말에는 오가피가 인기였다. 이 원장은 “일반적으로 인기 있는 것을 심자고 생각했으면 오가피를 심었어야했지만 ‘남들 다 하는 것’ 하기 싫어서 헛개에 집중했다”며 “그때 오가피를 심었으면 1~2개월만에 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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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미친 사람

그의 도전은 헛개나무를 너머 작두콩으로 이어졌다. 1992년 일본 여행중에 만난 작두콩을 들여왔다. 일본에서는 비염 증상을 완화하는 작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원장은 4년간의 연구 끝에 1996년 국내 최초로 작두콩 재배에 성공했다. 이후 작두콩은 다른 여러 농장으로 퍼졌다. 이 원장은 “최근 작두콩의 인기가 높아지며 많은 농가들이 작두콩으로 만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내 자식같은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고 했다.

1999년에는 감초 재배에 도전해 성공했고 지난해부터는 페루의 산삼이라고 불리는 마카 재배에 나섰다. 지금은 흑구기자에 도전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인삼과 블루베리에 있는 유효성분이 모두 들어있는 품목”이라며 “청양 구기자연구소 등에선 재배하기 어려워 안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올해 시험 재배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올 가을 쯤 흑구기자를 분양할 예정이다.

◆실패에서 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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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도전에 성공만 뒤따랐던 것은 아니다. 실패도 맛봤다. 헛개나무는 독성이 논란에 휩싸이며 직격탄을 맞았다. 일부 한의학자들을 중심으로 헛개나무 열매에 독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

이들은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기존의 연구결과를 반박하며 오히려 간 손상이 된 환자가 복용하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의 헛개나무 추출액을 취급하는 대리점이 12개까지 늘어났을 때였다. 대리점주들은 이 원장을 찾아와 제품을 모두 반품하겠다고 했다. 이 원장은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헛개나무를 키우던 농장들이 밭을 갈아엎었다. 하지만 이 원장은 그 장면을 보고 ‘원조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역발상으로 생각하며 버텼다.

독성 논란은 사그러들었다. 광동제약, 한국야쿠르트 등 대기업들은 헛개나무를 계속 팔았다. 시장은 죽지 않았다. 동시에 헛개나무가 좋다는 연구결과들도 하나둘 발표됐다. 지금도 독성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이 원장의 제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이 원장은 약초시장이 주장에 따라 출렁이는 구조가 된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특히 최근에 종합편성채널에서 건강 정보가 쏟아지면서 이같은 구조가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약초에도 학문적인 연구가 좀 더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자연치유를 의료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엔 대체의학을 연구하는 학과가 전국에 3곳밖에 없다”며 “기존의 양약과 한약의 관점이 아닌 예방 목적의 대체의학의 관점에서 약초에 대한 연구를 좀 더 깊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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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칠십, 계속 배우고 싶다”

이 원장은 여전히 새로운 기술과 지식에 목말라한다. 그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2004년 이후 10년간 매년 두 나라의 해외 농업현장을 다니고 있다. 독일의 자연치유산업, 스위스의 수출농업 육성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50년간 약초를 키웠지만 그것도 한 순간에 옛날 지식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계속 습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 지원이 기술과 지식을 중심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보고 있다. 이 원장은 “기술과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조금 받아서 농업에 뛰어들면 소득창출을 못한다”며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이 선행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약초에 관한 세미나가 열리면 요즘도 참가 신청을 한다. 강의를 하러도 가지만 강의를 듣기 위해서도 간다. 이 원장은 수강생으로 참석했던 각종 세미나에서 받았던 100여개의 명찰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귀농인들에게 교육한다는 사람이 새로운 지식을 안배워서 어떻게 가르치겄어. 묵은 지식으로 미래를 살 수는 없는겨. 그러니까 계속 공부해야지.”

공주=FARM 강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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