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부부의 삶, 힘들지만 뿌듯해요"

'하극상'으로 만난 부부
우연히 연병장 뛰던 고 상사, 교육생으로 착각한 임 중사
'야, 너 거기 서!'라고 소리쳐…"건방진 여군이네 생각했죠"

훈련 속 피어난 사랑
산악전문교육 훈련서 재회…연애 두 달만에 전격 혼인신고
"고된 훈련 중 임신사실 알았죠"

육아 전쟁 그래도 행복
집으로 돌아오면 육아의 연속, 서로 얼굴 10분 보기도 힘들어

국방부 공모 달첨돼 화보 촬영
"온 식구 모여 사진 찍은게 처음…세 딸 군인되길 원한다면 시킬 것"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특전사 대위 유시진과 의사 강모연의 달달한 로맨스따윈 없었다. 현실 속 특전사 부부 고태현 상사(36)와 임영민 중사(30)는 ‘태양의 후예’ 주연인 배우 송중기와 송혜교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군인이자 배우자, 세 딸의 부모 역할을 씩씩하게 해내고 있었다.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최근 경기 광주 특수전학교 옆 군인아파트에서 고 상사와 임 중사 부부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내 시끌벅적했다. 두 사람은 중간중간 세 딸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째 딸 경빈양(5)은 자신이 모은 스티커를 자랑하다가 만화를 보여달라고 졸랐다. 둘째 딸 수빈양(3)은 화장실에 같이 가달라고 임 중사를 졸랐다. 고 상사는 막내딸 유빈양(2)의 기저귀를 갈았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란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고 상사와 임 중사는 지난 5월 국방부가 군인 가족을 대상으로 연 화보 촬영 이벤트에 사연을 보내 당첨됐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찍은 첫 가족 사진이었다. 임 중사는 “막내 유빈이의 성장앨범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고, 가족끼리 모이는 시간이 모자라 화보 촬영을 신청했다”며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고 상사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멋진 촬영을 했다”며 “사실 배우 송중기 씨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건 차마 못 보여드리겠다”고 수줍게 웃었다.

엉뚱한 첫 만남, 번개 같은 결혼

전남 목포 출신인 고 상사는 2002년 5월 특전사에 입대했다. 특수전학교에서 고공낙하 훈련 보직을 맡고 있다. 그는 “군에 오기 전까진 특전사와 공수부대가 같은 말인 줄도 몰랐고, 군인이란 직업에 관심도 별로 없었다”며 “군대 가라는 영장이 나와서 우연히 병무청에 들렀다가 특전사 모병관을 만났다”고 말했다. “그게 운명을 바꿨습니다. 이왕이면 남자다운 남자가 되고 싶었고, 특전사에 가면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원서를 썼고, 특전사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아내도 만났고요.”

임 중사는 올해 10년차 특전사다. 7년 동안 특수전학교에서 교육생 훈육관으로 일하다가 최근 특수전사령부로 옮겼다. 충남아산 인근이 고향인 그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 활동을 시작했고, 사촌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일하면서 고민이 됐어요. ‘2세에게 부끄럽지 않은 직업이 뭘까’ 하고요. 그때 여군을 떠올렸습니다. 이왕이면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훈련을 받는다는 특전사에 가고 싶었어요. 특전사는 1년에 두 번 뽑습니다.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 시험에 합격했죠.”

'다자녀 특전사 부부' 고태현 상사·임영민 중사 "고된 훈련 끝나면 세 딸과 '육아전쟁'"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다소 엉뚱했다. 고 상사는 “지금 생각해도 아내는 참 터프했다”며 당시 사연을 소개했다. “2010년 여름이었어요. 같은 부대에 있어도 보직이 다르면 서로 만나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제가 운동장에서 혼자 구보할 때 어떤 여군 하나가 ‘야, 너 거기 안 서’하고 쫓아오는 거예요. ‘우리 부대에서 나한테 저렇게 소리 지를 여군은 없을 텐데’ 했는데 분명 저를 향해 오고 있었어요. 그때 만난 여군이 지금 아내입니다. 아내는 ‘훈련생인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하고 돌아갔죠.”

운명이었을까. 그해 9월, 고 상사와 임 중사는 각각 산악훈련 교관과 교육생 신분으로 다시 만났다. 고 상사는 임 중사를 보고 ‘아, 그때 그 건방진 여군이구나’ 하고 열심히 ‘굴리며’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그러다 서로 정이 들었다. 임 중사는 “남편과 나 둘 다 멘토로 모시는 선배가 있었는데, 그분이 우리를 이어 주셨다”며 “그 때문에 우리 부부로부터 지금까지 원망을 듣고 있다”고 웃었다.

2010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2일 혼인신고부터 했다. 고 상사는 “혼인신고서가 없으면 군인아파트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혼인신고부터 먼저 했다”며 “그것 때문에 처음에 처갓집 가서 엄청나게 혼났다”고 말했다. 임 중사는 “만난 지 1주일 만에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가족을 만났는데, 어머님께서 날 너무 마음에 들어하셨다”며 “두 번째 인사드렸을 땐 언제 결혼할 거냐고 말씀하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결혼식은 만난 지 1년 만인 2011년 10월 특수전학교에서 올렸다.

‘특전사 군인’과 ‘세 아이 부모’ 사이

군인 부부의 결혼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우선 보직이 달랐기 때문에 하루에 얼굴 보는 시간이 10분도 채 안 됐다. 고 상사는 훈련을 마치면 집으로 왔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다소 규칙적이었지만, 교육생 훈육 담당이던 임 중사는 새벽에 출근했다가 한밤중에 퇴근했다.

“연애 기간도 짧았던 데다 서로 일정이 안 맞다 보니까 부부라 해도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주말이나 쉬는 날엔 24시간 중 20시간 동안 잠만 잘 정도로 지친 일상이었거든요. 그래서 신혼 때 많이 싸웠습니다.”

특히 임 중사가 첫 아이 경빈이를 임신했을 때 첫 위기가 왔다. 임신인 줄 모른 채 교육생과 함께 고된 훈련을 함께하다 절박유산(임신 유지는 가능하지만 출혈이 동반돼 유산이 우려되는 것) 상황이 닥쳤다. “그냥 몸살기가 있나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임신테스트기를 보니 희미하게 두 줄이 나오더라고요. 산부인과를 가니 임신 7주라고 했어요. 절박유산이란 말에 너무 놀라서 얼른 병가를 내고 아이 낳기 전까지 내내 누워 지냈어요.”

“힘겨운 군인 생활을 하면서 세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 중사는 “아이들은 결코 내 삶의 장애물이 아니다”며 “애들이 생겼다고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고 강조했다. “세 아이 생일이 신기하게 다 8월이거든요. 더위 때문에 산후조리하기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주위에서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특히 임신 기간 동료와 선후배들이 너무 잘 챙겨줬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군인이니까 더 떳떳한 부모가 되고, 부부가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 상사는 “서로의 일을 너무 잘 알다 보니 생각보다 업무와 관련해 걱정하는 건 덜하다”면서도 “그래도 특전사 군인이란 특수 직업을 가진 부부로서 종종 애환을 느낄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저희가 성격이 정말 달라요. 전 꼼꼼하고, 잔소리도 하는 편인데 아내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성격이거든요. 실은 집에서 요리도 제가 더 많이 합니다. 직업이 같으면 이해도 잘되지만, 부딪칠 때도 많이 있어요. 직업으로서 특전사의 장점과 단점이 뭔지 너무나도 잘 아니까요.”

“딸들이 원한다면 군인 시키고파”

고 상사와 임 중사는 “군인끼리 결혼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고 상사는 “이렇게 말하면 닭살이 돋을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라며 “아내도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며 파안대소했다. 임 중사는 “여군들은 보통 군인과 결혼을 많이 하는 게 현실인데 자상한 남편을 만나서 좋다”고 했다.

지금 부부의 고민은 세 딸의 육아다. 세 딸 모두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없어서 아쉽다는 것이다. 고 상사는 “아이들이 갓난아기였을 땐 우리 부모님께서 돌봐주셨다”며 “양가 어르신들이 많이 신경쓰셔서 아내와 나 모두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과 좀 멀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임 중사는 “특전사 부부로 산다는 건 끊임없는 훈련과 고단한 육아의 연속인 게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남과 다른 뭔가 특별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게 보람 있다”고 말했다. 또 “세 딸 중 한 명이라도 군인이 되고 싶다면 적극 찬성하고 밀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어쩌면 좀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남편과 저는 군인이잖아요. 군인은 군인다워야죠. 그냥 입에 발린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군인 부부들은 다 이런 마음으로 애들 키우며 살고 있을 거라 믿어요."

훈련 강도 '빡세기'로 유명…유사시 적진 침투, 평시엔 재난구조 등 활약

특전사의 세계


특전사는 대한민국 육군 특수부대로, 정식 명칭은 ‘육군특수전사령부’다. 특수전사령관은 3성 장군(중장)이 맡는다. 구호는 “안 되면 되게 하라!” “귀신같이 접근하여, 번개같이 타격하고, 연기같이 사라져라”다.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과 더불어 국군 특수부대의 양대 메카로 불린다.

주요 임무는 유사시 육지 및 공중, 바다 등 다양한 경로로 적진에 침투해 게릴라전, 교란작전, 정찰, 정보수집, 직접타격, 요인암살 및 납치, 인질구출, 주요 시설 파괴, 심리전 등 각종 특수작전 수행이다. 전쟁 발발 시 주한미군 특수작전사령부와 병합돼 연합특수전사령부로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또 대한민국 특수전사령관은 연합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지정된다. 평시에는 대(對)테러 작전이나 해외 파병, 재해재난구조 등 다양한 특수임무를 맡는다.

특전사 역사는 1958년 4월1일 제1전투단이 창설되면서 시작됐다. 6·25전쟁 당시 유격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던 군인을 모아 백문오 대령을 초대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이후 1969년 특수전사령부가 설립됐다. 현재 특수전사령부 본부, 1공수특전여단(독수리), 3공수특전여단(비호), 7공수특전여단(천마), 9공수특전여단(귀성), 11공수특전여단(황금박쥐), 13공수특전여단, 국제평화지원단(온누리),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백호), 특수전학교로 구성돼 있다. 각 여단은 대대로 나뉘고, 1개 대대 안에 3개 지역대가 있다. 지역대 안에는 5개 중대가 있다. 특전사에선 중대를 팀이라고도 부른다. 1개 중대는 10명 안팎으로 편성된다.

특전사는 남녀 자원 입대 형식의 부사관 체제다. 필기시험과 체력테스트 등 모병 과정 통과 후 특수전학교에서 특전부사관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부상으로 훈련을 받을 수 없거나 심의 기준에 미달하면 특수전학교에서 퇴교된다. 합격 후에도 평시 훈련 강도가 너무 강해 의무복무기간(4년6개월)만 채우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과반에 이른다.

광주(경기)=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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