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은 사장으로부터 4500만원대 명품시계를 받아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전 KT&G 노조위원장 전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부정한 청탁과 함께 시계를 받았다는 점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는 게 판결 이유다.

배임수재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부정한 청탁을 받고 이른바 ‘뒷거래’를 통해 경제적인 이득을 취한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재판부는 “청탁 대가로 시계를 줄 목적이었다면 미리 선물을 준비해 비밀리에 줬을 텐데 민영진 전 사장은 거래처로부터 받은 시계를 열어보지도 않고 제3자가 동석한 자리에서 건넸다”며 배임수재죄를 입증할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시계를 건넬 당시 노조가 회사 요청을 일부 받아들여 구조조정이 진행됐지만, 근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이뤄졌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도 고려됐다.

서초동의 형사소송 전문변호사는 “상식상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같이 출장을 간 자리에서 고가의 시계를 받은 것이 무죄라는 게 이상해 보일 순 있지만 법리상 재판부 판단에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 항소에 대해 “검찰이 ‘청탁’에 관해 1심을 능가하는 증거를 내세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는 뇌물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뇌물죄는 실질적인 이득이 없어도 요구와 약속만으로 처벌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혐의의 주체가 공무원으로 한정된다. 민영화가 이뤄진 KT&G의 노조위원장은 법률상 공무원 지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배임죄를 적용하기도 모호하다. 배임죄는 부정한 청탁 없이 입증이 가능하지만 회사 등에 손해가 발생해야 한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4선 노조위원장을 지낸 전씨는 사장이 외국 거래처 회장으로부터 받은 시가 4500만원 상당의 ‘파텍필립’ 명품시계를 건네받았다. 당시 KT&G는 명예퇴직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을 겪다 그해 6월 합의를 이뤘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