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결책 외면한 정치권의 '기업 탓'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조건으로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 노동관계법 개정 때 ‘근로자 파견법’이 제정된 배경이다. 제정 취지와 달리 경기 여건이 나빠지더라도 고용과 임금을 유연하게 조정하기가 여전히 힘들었다. 산업 현장에서 강성 노조의 연례 파업도 계속됐다.

2000년대 글로벌 경쟁 심화는 기업에 비용 절감을 위한 아웃소싱을 강요했다. 그로 인해 비정규직과 급여 격차 문제가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기간제법을 제정하고 10년 가까이 된 파견법을 개정해 현행 비정규직법의 뼈대를 마련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촉진과 고용 차별 해소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주된 목적은 비정규직 사용 제한이었다.

기대와 달리 비정규직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2년간의 ‘사용기간’ 제한은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시점에서 ‘해고 대란’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은 원칙적으로 파견이 금지되는 등 파견업종이 지나치게 적어 기업의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대기업 강성 노조들은 정규직의 높은 임금 인상률을 관철하면서 비정규직 확산에는 눈을 감았다.

이런 이유로 비정규직 관련법을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여건에 맞게 개정하자는 요구가 산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하지만 ‘비정규직 철폐’라는 노동계의 명분에 막혀 논의다운 논의는 없었다. 과도한 규제와 강성 노조의 벽에 가로막힌 기업들은 기간제, 파견, 용역 등 비정규직 근로자 활용 방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현재 비정규직 비중은 32.8%로 2005년 36.6%보다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임금 격차도 크다.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정규직의 37%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노동시장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은 외면해 왔다. 법제도와 노사 관행을 고치는 역할을 이해당사자인 노·사·정에만 떠넘겼다. 게다가 지금은 비정규직 확산의 주된 책임을 엉뚱하게 기업에 묻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