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2012년부터 추진 중인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 유치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손본다. 석학을 초빙하는 데 거액을 썼지만 성과가 신통치 않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서울대는 석학 유치 대신 유망 신진 연구자 발굴에 더 집중할 계획이다. 서울대의 방침 변화는 경쟁적으로 노벨상 수상자 유치에 매달리는 대학가 풍속도를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단독] 서울대의 반성…160억 쓴 '노벨 프로젝트' 바꾼다
◆절반으로 깎인 해외 석학 초빙 예산

19일 서울대에 따르면 올해 해외 석학 초빙 프로젝트 예산이 18억원으로 사업 시작 당시 계획(연 30억원)에 비해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그동안 한 사람에 최대 15억원을 들여 노벨상 수상자나 그에 준하는 석학을 초빙했지만, 올해는 처음으로 신규 임용 없이 종전 계약만 갱신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대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 시작했다. 2011년 법인화 이후 첫 대규모 연구지원 프로젝트로 꼽힌다. 201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사전트 미국 뉴욕대 석좌교수를 비롯해 다니엘 셰흐트만(2011년 노벨화학상)·아론 치에하노베르(2004년 노벨화학상)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 교수 등 영입만으로 화제가 되는 석학이 잇달아 초빙됐다. 꿈의 나노 물질인 그래핀 연구로 노벨상 수상이 기대되는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영입됐다.

프로젝트 첫해인 2012년 4명 임용을 시작으로 매년 2~3명을 유치, 올해까지 12명의 석학이 서울대를 찾았다. 이들은 서울대에서 강의, 공동연구 등을 하는 조건으로 1~2년 계약에 10억원 내외의 연봉(연구비·체재비 포함)을 받았다. 프로젝트에 들어간 돈은 올해까지 179억원에 달한다.

◆유망·신진 연구자 지원으로 방향 선회

그러나 지난 5년간의 성과에 대해 학내외 평가는 회의적이다. 국내 연구진과의 공동 연구나 대학원생 지도,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등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없지 않았지만 기대 이하라는 지적이 많다. 한 서울대 자연대 교수는 “과거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긴 했지만 새로운 연구를 하지 않는 원로가 적지 않아 국내 학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애초 취지와 맞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명성과 실적만으로 채용했다가 쓴맛을 본 사례도 있었다. 작년까지 서울대 의대에서 활동한 한 석학은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돼 아예 한국 땅을 밟지도 못했다. 자연대 화학부에 임용됐던 또 다른 석학도 현지 일정이 너무 빠듯해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는 연내 석학 초빙 사업을 재검토해 개선점을 찾고 내년 예산 편성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업 주관부서도 지난달 말 교수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교무처에서 연구 지원을 담당하는 연구처로 바꿨다.

석학 대신 서울대 내 젊은 연구자의 장기 연구를 지원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작년부터 시작한 ‘창의선도 신진 연구자 지원 사업’의 예산을 늘려나간다는 구상이다. 당장 빛을 보지 않더라도 10년 뒤 노벨상급 성과를 낼 수 있는 조교수·부교수급 젊은 학자들의 도전적인 연구를 10년간 꾸준히 지원한다. 김성철 서울대 연구처장은 “세계 학계를 주도하는 석학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는 것은 유익하기 때문에 명맥은 유지할 것”이라면서도 “보여주기식 석학 초빙은 지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