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로 대놓고 광고…불법도박·보이스피싱 등 조직에 발 묶여

"해외 고수익 알바입니다.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저희와 함께 오랫동안 근무하고 싶으신 분들은…."

지난해 11월 한 인터넷사이트의 구인·구직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중국 산둥지역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이 게시물에는 스마트폰 메신저인 위챗과 카카오톡 아이디가 적혀 있다.

조회수는 417건이다.

비슷한 해외 아르바이트 광고 글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얼핏 평범해 보이는 구인광고 글에 이삼십대 청년들이 '낚여' 해외 범죄조직 수하에서 일하는 전과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평범한 취업준비생이 해외도피 전과자 '전락'

16일 경기 일산동부경찰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모(27·무직)씨는 2015년 3월 인터넷을 하다가 '해외 고수익 알바' 모집 글을 보게 됐다.

당시 김씨는 졸업 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빚도 많이 진 상태였다.

혹하는 마음에 글을 올린 사람에게 스마트폰 메신저로 연락했고, 베트남행 항공권과 현지 숙식 제공, 월 250만원 이상의 수익과 인센티브 조건 등을 듣게 됐다.

김씨는 그달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베트남으로 떠났다.

가족들에게는 "해외 현지 사무실에 취업이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김씨가 하게 된 일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이용자들에게 게임머니를 충전해주거나 환전해 계좌로 입금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월 250만∼300만원씩을 벌었고, 3개월에 한 번씩 비자 갱신을 위해 일주일씩 한국에도 휴가처럼 나올 수 있었다.

함께 일하는 또래도 4명이나 됐다.

다들 김씨처럼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거나 사업을 하다가 접고선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그렇게 베트남 생활에 적응해버린 김씨는 무려 1년 6개월 동안 6번의 출입국을 반복하며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도왔다.

그러나 영원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이 생활도 도박사이트가 경찰에 적발되면서 순식간에 무너졌다.

김씨가 이름도 모른 채 지시를 받았던 '최 사장'이란 사람은 적발된 지 한 달 만에 연락이 끊겼고, 김씨와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모두 갈 곳이 없어졌다.

한국으로 돌아갔다간 경찰에 붙잡히거나 '조폭'과 친해 보이던 최 사장 일당이 보복을 할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김씨는 결국, 베트남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8개월이나 전전한 끝에 경찰에 자수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최 사장한테 이용당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 해외 구금 사례도…국내 들어오면 '이중 처벌'

김씨와 같은 불특정 다수의 이삼십대 청년들이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6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전까지 해외의 범죄조직들은 알음알음으로 조직원을 모집해왔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해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 메신저로 연락이 가능해지고, 잠적도 쉬워지면서 이 같은 양상이 나타났다.

정말 속아서 가거나 또는 대충 눈치는 챘지만 '잠깐' 큰돈을 벌어보려고 한번 발을 들였다가 타지에서 불법 체류자에 전과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베트남 뿐만아니다.

캄보디아, 중국 칭다오, 연변조선족자치주 옌지 등에도 서버와 사무실을 둔 불법도박 사이트들이 횡행하고 있다.

또 불법도박 외에 성매매와 보이스피싱 등 조직도 '해외 고수익 알바'를 내걸고 대놓고 조직원을 모집한다.

김선겸 일산동부서 사이버수사팀장은 "그래도 김씨 사례는 운이 좋은 경우"라면서 "다른 나라 경찰에 먼저 체포돼 구금되는 사례도 적지 않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로 들어오면 또 처벌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 일당은 베트남에서 자신들이 일한 사무실이 불법인지 몰랐다고 우겨 국내로 일단 들어오기라도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이 2015년 인터폴에 수배한 중국 칭다오에 있던 한 용의자는 이듬해인 2016년 중국 공안에 붙잡힌 뒤 현재까지 구금돼 있다고 한다.

경찰은 이날 김씨와 함께 베트남에서 '해외 고수익 알바'에 가담한 다른 4명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김 팀장은 "불법 도박 사이트의 운영 총책이 아닌 조직원인 경우에도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받는다"며 "대개 징역 8개월에서 1년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된다"고 전했다.

(고양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suk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