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큰 사건 만들지 말라" 대선 앞둔 검찰의 '신중 모드'
대선 바람은 탄핵 바람보다 더 센 것일까. 탄핵으로 주목받고 있는 검찰이지만 요즘 분위기는 예상외로 ‘침묵 모드’다. 검찰의 ‘입’인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차장검사(대변인격)조차 휴대폰을 안 받기 일쑤다. 최근엔 검찰 고위층으로부터 “당분간 언론에 날 만한 큰 사건을 만들지 말라”는 자제령이 떨어졌다는 게 검찰 소식통의 전언이다. 권력의 풍향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데다 내부적으론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벗어야 한다는 젊은 검사들의 목소리도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풍 전야 검찰 조직

올 들어 서울중앙지검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고, 탄핵 직후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부서 가릴 것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특수부 소속 검사들은 1주일 내내 서류에 코를 박고 살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수부 소속 검사들에게도 ‘주말’이 생겼다.

평검사들이 때아닌 여유를 조금이나마 갖게 된 건 다음달 9일 대선을 앞두고 검찰이 ‘눈치 보기’에 들어가면서부터라는 게 검찰 사정에 밝은 이들의 분석이다. 특수부의 A검사는 “요즘엔 공소 유지만 하고 특별한 대형 사건을 벌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은 검사들을 제외하면 특수1~4부의 사정이 대부분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을 앞두고 괜한 잡음을 만들지 말자는 계산이 깔렸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특수부는 첨단범죄수사부 강력부 등과 함께 ‘기획성’ 인지수사를 하는 대표적인 부서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엔 ‘장미 대선’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예전엔 대선 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검찰 조직이 움직였다”며 “하지만 올해는 워낙 급하게 대선 일정이 잡혀 검찰도 어수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검사’ 딱지 붙을까 노심초사

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것도 검찰이 신중해진 배경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의 거취가 불투명한 데다 ‘검사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자리를 누가 받을지도 안갯속이다. 일부 검사들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검찰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돌면서 검찰 지휘부는 정치 검사라는 딱지가 붙지 않도록 내부 기강을 단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특정인을 거론하며 “노무현 정부 때 문재인 민정수석, 비서실장 밑에서 사정비서관으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검찰 최대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약 15만표를 갖고 있는 경찰 조직이 검찰의 수사권을 조정하고 영장청구권 독점을 없애달라며 전방위로 뛰고 있다”며 “정치 검찰이란 오명 속에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구속시킨 검찰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검찰 내부에선 적폐의 상징격인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를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우병우 특검’이 만들어지면 검찰 내부 구성원도 도마에 오를 수 있어서다.

고윤상/박상용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