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정치를 씹다
‘최순실 게이트’부터 5월9일의 ‘장미 대선’까지 굵직한 정치 이슈가 잇따르면서 TV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등에서 시사 풍자가 부쩍 늘고 있다.

케이블 채널 SBS플러스는 지난 15일 시사풍자 예능 ‘캐리돌 뉴스’(왼쪽)를 시작했다. 정치인 얼굴을 닮은 인형을 만들고, 성우들이 정치인 목소리를 흉내 내는 인형극이다. 28일 방영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닮은 ‘GH’ 인형이 퀴즈쇼에 출연해 상대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풍자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얼굴을 한 ‘기춘대원군’ 인형은 질문마다 “모릅니다. 본 적도 없고요. 들은 적도 없어요”라고 되풀이했다. 최순실 씨를 상징하는 인형 ‘순siri’는 구치소에서 전화로 퀴즈쇼에 참여해 “요즘 내가 온몸이 근질거려. 국정을 돌보지 못해가지고…”라고 했다.

25일 새 시즌을 시작한 케이블채널 tvN의 ‘SNL코리아’는 ‘미운우리 프로듀스101’(오른쪽)이라는 코너를 새로 선보였다. Mnet의 아이돌 선발 예능 ‘프로듀스101’과 SBS의 일상 관찰 예능 ‘미운우리 새끼’ 형식을 섞은 정치 패러디 코너다. 문재인 안희정 안철수 홍준표 이재명 유승민 등 각 정당 대선주자를 상징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이 시청자 투표에서 1등을 차지하기 위해 합숙 캠프에서 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렸다.

‘레드준표’는 “여자 솔로로 데뷔한 선배가 다른 사람 목소리로 립싱크를 하다 걸려서 기획사 팬이 여럿 떠났다”며 ‘새놀이 기획사’ 이름표를 ‘JYD엔터테인먼트’로 바꿔 달고 나온다. ‘투게더 엔터테인먼트’의 ‘문재수’는 “4년 전 데뷔할 결정적인 기회가 있었지만 놓쳤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안찰스’는 “투게더엔터에서 데뷔를 안 시켜주고, 나를 간 본다고 욕해서 피플컴퍼니로 옮겼다”고 얘기한다.
방송가, 정치를 씹다
MBC 대표 예능 ‘무한도전’은 ‘국민내각’ 특집을 기획해 촬영까지 마쳤으나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대표 200명과 국회의원이 사회 현안을 의논하는 내용인데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의 출연이 문제가 됐다. 김 의원은 바른정당 창당 행사 등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한국당 윤리위원회에서 당원권 정지 3년 징계를 받았다. 한국당은 “김 의원을 당을 대표하는 인물로 초대한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며 28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31일 기각됐다. MBC 관계자는 “김 의원은 주택문제 전문 국회의원으로 섭외한 것이지 특정 정당 소속이라 섭외한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드라마에도 시국 관련 장면이 늘었다. 30일 종영한 KBS ‘김과장’은 전날 방영한 19회 결말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극중 악덕 기업주 박현도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는데, 만화로 그린 영장에는 ‘이름: 박OO, 나이: 65세, 혐의: 불법 비자금 조성, 공무상 비밀 누설, 국정농단, 직권남용’ 등이 적혀 박 전 대통령의 영장을 암시했다. 영장 청구 날짜가 2017년 3월10일인 것도 실제 상황과 같았다.

21일 종영한 드라마 ‘피고인’은 극중 악역인 재벌 2세 차민호를 통해 정치 상황을 풍자했다. 차민호가 검사 앞에서 팔짱을 끼고 조사받는 장면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패러디했다. 그의 죄수번호 1001번은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실 번호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