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에 '공신력' 속임수

'공유'부터 누르는 SNS 유저들
믿는대로 보려는 '확증 편향' 가짜뉴스 창궐 가장 큰 원인

정부 '가짜뉴스와의 전쟁'
현행법상 형사처벌 쉽지 않아…전담반 실적 단 1건에 그쳐
[경찰팀 리포트] '~카더라' 넘어선 가짜뉴스…미국 이어 한국 대선도 흔드나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가짜뉴스’가 보여준 파급력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5개 중 4개가 가짜뉴스였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1위)거나 ‘힐러리가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3위) 등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졌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자극적인 내용을 접하자마자 ‘공유(share)’ 버튼을 눌렀다. 이 가짜뉴스에 대한 공유나 댓글 건수는 각각 96만건, 79만건에 달했다.

[경찰팀 리포트] '~카더라' 넘어선 가짜뉴스…미국 이어 한국 대선도 흔드나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가 ‘가짜뉴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 정부는 이달 가짜뉴스나 증오 표현을 방치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에 최대 600억원 벌금을 부과 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어 가짜뉴스가 여론을 선동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 5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안 그래도 교묘하게 포장된 가짜뉴스에 취약한 국가다. 지난 대선에서도 ‘~카더라’ 식의 ‘찌라시(사설정보지)’가 판을 쳤다. 허위 비방이나 흑색선전을 담은 정체 모를 찌라시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수년째 무차별 유통되고 있다. 선거관리당국은 찌라시보다 더 강력한 가짜뉴스 범람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찌라시’ 업그레이드 버전

가짜뉴스는 교묘하게 조작된 ‘속임수 뉴스’를 뜻한다. 기존 뉴스 형태를 띠고 있고, 일정 부분은 ‘팩트(사실)’에 기반한다. 선거 등에서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핵심 내용을 왜곡하거나 조작한다. 대부분 사실 확인이 쉽지 않은 자극적인 내용들이다.

‘찌라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찌라시와 달리 기성 뉴스의 공신력을 내세운다. 한 대학교수는 “가짜뉴스의 생명력은 얼마나 ‘공신력’ 있게 보이냐에 달렸다”며 “내용이 찌라시와 같아도 독자는 체계적인 기사 형태 그 자체에 속는다”고 말했다.

찌라시는 정치권이나 기자, 정보 업무를 하는 소위 ‘IO(intelligence officer·정보관)’ 등이 생산한다. 반면 가짜뉴스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찌라시 생산자나 사이비 언론은 물론 청소년들도 재미 삼아 만들 수 있다. 가짜뉴스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인터넷사이트도 수두룩하다. 데일리파닥은 기사처럼 제목, 기자명을 넣고 사진을 첨부하면 어떤 내용도 기사 형태처럼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짜뉴스를 만드는 걸 돕거나 장난 수준의 가짜뉴스를 만드는 것이 위법은 아니라는 게 선거관리위원회 설명이다.

가짜뉴스의 강력한 파괴력은 유통 구조에 있다. 찌라시는 단체 카톡방 위주로 음성적으로 퍼지는 반면 가짜뉴스는 공개적으로 유통, 확산된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오늘의 유머(오유), 뽐뿌 등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짜뉴스가 주로 도배된다. 해당 사이트에서 호응을 얻었다면 페이스북, 카톡, 트위터, 네이버밴드 등 SNS로 2차 확산된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정보만 수용하려 드는 ‘확증 편향’이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올 들어 가짜뉴스 범람

가짜뉴스는 올 들어 폭증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인공지능 전문기업 다음소프트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 블로그 트위터 커뮤니티 등 인터넷상에서 가짜뉴스가 언급된 게시물은 올 들어 지난 9일까지 7만7257건에 달한다. 2015년엔 한 해 820건에 불과했다. 가짜뉴스 소재는 ‘극우’ ‘빨갱이’ 같은 극단적 정치성향(33%)이 가장 많았고, 선거(28%) 범죄(20%) 경제(8%) 순이었다.

국정농단 의혹을 둘러싼 탄핵 국면 때도 가짜뉴스가 쏟아졌다. 탄핵 선고를 앞두고 ‘이정미 헌법재판관 남편이 통진당원’이란 가짜뉴스가 급속도로 퍼지기도 했다. 이 가짜뉴스는 한 극우성향 언론의 칼럼에서 시작됐다. 정작 칼럼엔 이 재판관의 남편에 대한 내용은 없었지만 일베 등 인터넷 커뮤니티를 거치며 교묘하게 조작돼 밴드, 카톡 등을 통해 확산됐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가짜뉴스로 피해를 봤다. 대선 출마 선언 직전 ‘반기문, 한국 대통령 출마는 유엔법 위반’이란 가짜뉴스가 터져나왔다. 유력 정치인들도 감쪽같이 속아 이 가짜뉴스를 인용하기도 했다.

신연희 서울 강남구청장은 지난 21일 구의원들과 만든 단톡방에 가짜뉴스를 공유했다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비방 혐의로 고발당했다. ‘문재인의 비자금 세탁’이란 제목의 가짜뉴스는 4년 전 쓰인 것으로 보수성향 웹사이트를 통해 재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가짜 언론’에 골머리

선관위와 검찰, 경찰은 가짜뉴스 전담반을 가동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200명 규모의 사이버대응센터를 운영 중이다. 경찰청도 사이버안전국에 ‘가짜뉴스 전담반’을 꾸렸다. 하지만 현행법상 가짜뉴스 생산·유포자를 처벌하긴 쉽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지난달 1일 가동한 가짜뉴스 전담반 실적은 단 한 건에 그치고 있다.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사이비 언론을 인지하고도 잡아들이지 못한다. 허위사실을 기사 형식으로 쓴 글이라도 언론사로 등록한 법인이 온라인에 게재한 경우 경찰 수사 영역이 아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먼저 다퉈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에 등록된 언론사만 6000여개인데 이 중 가짜뉴스 유통을 위해 세워진 가짜 언론사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처벌을 위해선 허위사실이 명예훼손이나 금전적 손해로 이어지거나 특정인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 데 입증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 가짜뉴스

fake news. 실제 언론 보도처럼 보이도록 가공해 신뢰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유포되는 정보(경찰).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한국언론진흥재단)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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