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가는 길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 차량(에쿠스)이 21일 오전 9시15분께 서울 삼성동 자택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삼성동 자택 주변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박 전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연합뉴스
< 검찰가는 길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 차량(에쿠스)이 21일 오전 9시15분께 서울 삼성동 자택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날 삼성동 자택 주변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박 전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오후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이후 9일 만의 외출이었다. 그날 입었던 짙은 남색 코트에 바지 차림으로 자택을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승용차(20오8206)를 타고 향한 곳은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었다. 포토라인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8분에 불과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14시간 넘게 강도 높은 검찰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대통령에겐 생애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1001호 조사실 옆에 휴게실

21일 오전 9시23분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9시25분부터 10분가량 노승권 1차장검사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장소는 10층에 있는 조사실(1001호) 옆 휴게실(1002호)이었다. 노 차장검사는 조사 일정과 진행 방식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진상 규명이 잘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통령은 성실히 조사받겠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정장현 변호사가 동석했다.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고검장급)과 검찰 수뇌부 집무실이 있는 13층에서 면담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빗나갔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이 조사를 받기 전 면담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검사장급)과 격을 맞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 중수부는 2013년 4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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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호칭 “대통령께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예우는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소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청사에 도착한 뒤 차량에서 내려 임원주 서울중앙지검 사무국장 안내를 받았다. 임 사무국장과 인사할 때는 엷은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취재진 앞에선 줄곧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무국장은 중앙지검 내 일반직 가운데 최고위직이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호칭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한웅재 형사8부 부장검사는 질문할 때 ‘대통령께서는’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검찰 측은 설명했다. 검찰은 속기를 담당하는 검사 가운데 한 명을 여성으로 배치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청사 로비에서 조사실이 있는 10층으로 올라갈 때 검찰 간부나 ‘귀빈’들이 이용하는 금색 엘리베이터 대신 은색 일반 엘리베이터(8호기)를 탔다. 검찰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다 하되 피의자인 만큼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이 조사 도중 화를 내거나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며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상 녹화는 동의하지 않아 무산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조사 과정을 영상 녹화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제244조2항에 따르면 검찰은 피의자의 진술을 영상 녹화할 수 있다. 피의자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상을 녹화한다는 사실은 알려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 측의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동의하는지를 먼저 물었다”며 “(박 전 대통령 측에서)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점심은 초밥 도시락, 저녁은 죽

2시간30분가량 이어진 오전 조사는 낮 12시5분께 끝났다. 박 전 대통령은 1002호 휴게실에서 변호인들과 함께 김밥·샌드위치·유부초밥이 조금씩 담긴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검찰청사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한 도시락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은 1001호실로 자리를 옮겨 오후 1시10분께부터 다시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오후 5시35분께 경호실 직원이 청사 인근 식당에서 주문한 죽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저녁 식사 후 오후 7시 10분께부터 조사가 재개됐다.

심야조사 피하려 오후 11시40분에 종료

검찰은 “오후 11시40분에 수사가 종료됐다”고 취재진에 알려왔다. 오전 9시35분 검찰조사를 시작한 지 14시간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신문조서를 확인하느라 22일 새벽에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인권보호수사준칙(법무부 훈령 제985호)에 따르면 검사는 밤 12시 이전에 피의자 조사를 마쳐야 한다. 만약 심야조사가 필요하다면 피의자나 변호인의 사전 동의 또는 인권보호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심야조사를 요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장시간 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