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검찰 출석을 몇시간 안 남겨둔 21일 새벽, 서울 삼성동 자택 인근은 삼엄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경찰 12개 중대(960여명)가 투입됐다. 김광석 강남경찰서장은 현장에서 경찰을 직접 지휘했다.

오전 4시30분께 박 전 대통령의 자택 1층에 처음 불이 켜졌다가 꺼진 뒤 오전 6시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박 전 대통령의 침실이 있는 2층은 오전 6시30분께 불이 켜졌다.

오전 7시가 지나자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와 지지자들이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정송주·매주 자매는 7시10분께 자택을 찾았다.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도 7시30분께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 시간 다가오자 술렁

지지자는 100명가량 모였다. 일부는 밤을 새웠다. 경남 사천에서 올라왔다는 유모씨(69)는 “어제 오후 올라와 밤새 자리를 지켰다”며 “탄핵이 원천 무효인데 검찰 조사라니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예정된 검찰 소환 시간이 다가오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는 자택 앞 도로에 드러누워 “나를 차로 치고 가라”고 소리쳤다. 일부는 발작을 일으켜 구급차에 실려가는 소동도 벌어졌다. 취재진을 향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9시15분께 모습을 나타내자 지지자들의 구호 소리는 더 커졌다. 청와대에서 자택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에 모습을 나타낸 박 전 대통령은 대문을 나서며 “많이들 오셨네요”라고 혼잣말을 했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엔 옅은 미소만 보인 채 검은색 에쿠스 차량에 올랐다.

차 안에서 손인사를 보내면서 삼성동을 빠져나가자 일부는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검찰 앞 촛불-태극기 긴장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주변은 이른 오전부터 삼엄한 경비 속에 극도의 긴장감이 흘렀다. 경찰 24개 중대(1920여명)가 투입됐다. 검찰과 경찰은 전날 밤부터 대검찰청 맞은편의 중앙지검 서쪽 출입문을 사실상 폐쇄했다. 대통령 경호실 소속 직원들도 새벽부터 나와 청사 주변과 내부 곳곳에서 주변 경계에 나서면서 긴장감을 더했다.

인근에서는 촛불과 태극기 집회가 소규모로 열렸다. 촛불 집회를 주최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8시30분부터 서초동 법원삼거리 부림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박 전 대통령 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권영국 퇴진행동 법률팀장은 “박 전 대통령이 드디어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한다”며 “검찰은 더는 범죄자에 대한 예우를 운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대 편에는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였다.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명예 회복을 위해 반드시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며 “검찰총장을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 관계자는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촛불과 태극기 모두 25일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고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도 취재 경쟁

검찰이 혼잡을 우려해 인원을 제한했음에도 포토라인 근처 취재진은 100여명에 달했다. 주요 외신도 앞다퉈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소식을 전했다.

일본 TV아사히, 중국 관영 CCTV는 박 전 대통령의 자택 출발부터 검찰 출두까지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 AP·AFP 등도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 모습을 보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박 전 대통령이 면책특권을 박탈당한 지 2주도 되지 않아 검찰이 신속하게 소환 조사를 하는 점에 비춰볼 때 조사가 느슨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지켜본 시민들은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양모씨(31)는 “박 전 대통령이 입장 표명을 한다기에 국민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진심 어린 메시지를 기대했는데 별 내용이 없어 허무했다”고 말했다. 삼성동에 사는 서모씨(64)는 “괜히 사회적 논란을 일으킬 말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구은서/황정환/성수영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