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한글 혼용이름 허용 법률 국회 계류 중…법원행정처 "40억원 비용 발생해 어렵다"

딸 이름을 한자와 한글을 혼용해 지은 부모가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한 출생신고 등은 수리해서는 안 된다'는 예규 탓에 허용되지 않은 딸 이름을 2년 만에 되찾았다.

법원이 개명 신청한 부모의 신청을 기각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부모의 항고를 받아들였다.

이와 관련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법원행정처가 우려를 표하고 나서면서 법안통과를 장담하기도 어렵다.

◇ '별처럼 순수하게 자라달라'는 딸 이름 2년 만에 되찾아
광주의 회사원 나승완(32)씨는 지난해 5월 갓 태어난 딸을 품에 안았다.

나씨는 아내와 고심 끝에 딸 아이에게 본인의 성씨인 '羅(나)'에 이름은 한자인 贇(빛날 윤)과 우리말 '별'을 합쳐 '羅 贇별'이라는 성명을 지어주려고 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나씨는 윤동주 시인을 좋아해 '서시', '별 헤는 밤' 등 별을 노래한 별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게 자라, 어려운 사람들의 그늘진 삶에 빛이 되어달라'는 의미를 담아 딸 아이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딸 이름은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해 사용한 출생신고 등은 수리해서는 안 된다'는 가족관계등록예규 제109호 5항을 근거로 출생신고 접수가 거부당했다.

딸을 출생신고해야 예방주사도 맞히고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어 우리말로 '윤별'로 우선 출생신고하고 개명에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나씨의 딸에 대한 개명신청을 기각했고, '한자+한글' 혼용 이름을 금지한 예규에 반발해 낸 대법원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행정심판 청구도 기각됐다.

지난 5월 나씨가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도 결국 각하됐다.

나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명신청을 기각 결정한 1심 결정에 항고했다.

지난 16일 결국 항고가 받아들여져 소중한 딸 이름을 2년 만에 되찾게 됐다.

광주가정법원은 '한글과 한자 혼용을 혼합해 사용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예규에만 규정됐을 뿐, 위임규정인 가족관계등록법에는 혼용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개명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1심 결정을 취소하고 개명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또 '부모 양성(兩姓) 쓰기 방지'를 위해 혼용을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 예규로 신청인의 작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는 요지로 판단했다.

◇ '한자+한글' 혼용 이름 허용하자…법률안 국회 계류 중
나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국민의당 정인화(전남 광양·곡성·구례) 의원은 출생신고 시 한글·한자 혼용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지난해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행법은 출생신고 시 자녀 이름에 한글 또는 통상 사용하는 한자를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제475호는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합하여 사용한 출생신고 등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는 아이의 이름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출생신고서를 받을 수 없다.

정 의원은 나씨와 같은 부모의 작명권을 지켜주기 위해 가족관계등록법 44조 3항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법률 개정안인 이른바 '윤별이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지난해 말 발행한 이 개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 '혼용 금지는 작명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것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는 점',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이 혼용을 직접 금지하고 있지 않고 이를 법률이 아닌 예규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는 점' 등을 들어 개정의 필요성에 수긍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법원행정처는 '한글·한자 혼용 이름은 국어기본법에 반할 우려가 있고, 혼용 이름이 우리나라 일반 인식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부모 양성 쓰기로 오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글·한자 혼용표기를 위해서는 법원의 전산시스템을 수정하기 위해 약 40억원의 예산과 구축 기간이 필요로 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비용·시간이 발생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나씨는 이에 대해 '40억원 소요 예산의 근거를 밝혀달라' 법원행정처에 정보공개 신청했으나 공개를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2년 만에 딸의 이름을 되찾은 나씨는 "개인적으로 딸 윤별이에게 원하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었지만, 같은 일로 불편을 겪는 분들이 계속해서 생길까 봐 우려스럽다"며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인 '윤별이법'이 꼭 통과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pch8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