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135위였다. 꼴찌 수준이다. 노사관계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이유로 한국에만 있는 비정상적인 노사 및 노정 관계를 꼽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비정상이 고용세습을 보장하는 대기업 단체협약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근로자가 100명 이상이면서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 2769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네 곳 중 한 곳꼴(25.1%)로 직원 자녀와 가족에게 일자리를 물려주는 ‘고용세습’을 보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특별채용하거나 같은 조건일 경우 노조가 추천하는 지원자를 뽑는 식이다.

‘현대판 음서제’로 불리는 고용세습은 주로 단체협약에 명시돼 있다. 단체협약은 노사 협상의 결과다. 노조의 이기주의도 문제지만 이를 용인한 사측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노사 협상 테이블에선 요구사항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거래가 이뤄지기 마련”이라며 “노조가 임금 인상폭을 낮추는 대신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해도 기업은 수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정관계에도 뒷거래가 있다. 정부는 2010년부터 노동단체에 ‘노사협력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원 근거는 같은 해 제정된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원만한 노사관계를 구축하자는 취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초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해마다 줬던 노사협력지원금 지급을 끊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을 파기한 데 따른 조치였다. 당장 노동계와 야당에서는 “정부가 돈으로 노총을 길들이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지난해 11월 고용부는 지원을 재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한국노총에 30억원을 주고 노동개혁을 사려고 했다”는 비아냥과 함께 “매년 정부 지원을 받는 노총이 무슨 대정부 투쟁이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