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에 무너진 '마약 청정국'
지난해 검찰과 경찰에 적발된 마약류 사범이 1만4000명대로 역대 최고치를 또 경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마약 청정국’ 기준(1만2000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필로폰 범죄가 크게 늘어난 탓이라는 분석이다. 필로폰은 감기약 등으로 누구나 쉽게 제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입건된 마약류 사범은 1만4214명으로 한해 전(1만1916명)보다 19.3% 늘었다. 필로폰·프로포폴·MDMA(엑스터시) 등을 포함한 향정신성의약품 범죄가 1만1396건으로 전체의 80.2%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필로폰 투약이 빠르게 늘고 있다. 향정신성의약품 범죄 70% 이상은 필로폰 유통·투약 범죄다. 다른 마약보다 원료를 구하기 쉬워서다. 코카인은 남아메리카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코카나무의 잎을 사용해 만든다.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도 경찰이 철저히 재배를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필로폰은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종합감기약을 정제해 제조할 수 있다.

만드는 방법도 쉽다. 고등학교 수준의 화학 지식만 있으면 감기약에서 필로폰의 주 원료인 슈도에페드린을 추출할 수 있다. 동영상으로 친절하게 필로폰 제조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까지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마약 제조법을 담고 있는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사실상 단속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반인도 막대한 양의 필로폰을 생산할 수 있다. 지난 2일 경찰에 적발된 황모씨(32)는 A감기약 1000통을 사서 서울 용산의 주택가 지하실에서 필로폰 500g을 제조했다. 한꺼번에 1만6000여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300만원어치의 종합감기약(1통에 3000원 선)으로 16억원 상당의 필로폰을 제조한 셈이다.

경찰 관계자들은 필로폰 제조 범죄를 막으려면 감기약 판매를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감기약이 마약 원료로 둔갑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현실적으로 이를 제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종합감기약 종류도 너무 많고 규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무엇보다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보다 규제로 인한 일반 국민의 불편이 더 크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