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말 여권에 삼성 나오자 "말 사준다 했지 빌려준다 했나" 화내
삼성 "최씨측 우회 지원한바 없어"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삼성그룹을 끌어들여 승마선수인 딸 정유라(21)씨를 위한 지원을 받은 '비선 실세' 최순실(61·구속기소)씨는 수사와 언론 취재 등으로 길이 막힐 때까지 철저히 삼성을 이용한 것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파악했다.

삼성 측이 '회사 자산'이었다고 주장했던 말(馬)도 사실은 정씨에게 사준 것으로 특별검사팀은 결론지었다.

5일 법조계와 체육계 등에 따르면 2015년 8월 최씨는 자신의 독일 법인인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를 통해 삼성전자와 약 213억원 규모의 용역계약을 맺고 '뇌물 거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삼성 승마단'의 해외 훈련 관련 용역대금을 처리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몄고, 삼성전자가 자산으로 말을 구매하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삼성전자가 산 말을 정씨에게 빌려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냥 '준 것'이라고 특검은 판단했다.

최씨는 그해 10월 7억원대 마장마술용 말 '살시도'를 사들였는데, 말 여권상 소유주가 '삼성전자'로 표시된 것을 알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용이 VIP를 만났을 때 말을 사준다고 했지, 언제 빌려준다고 했나.

왜 말 여권에 소유주를 삼성이라고 적었냐"며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최씨는 "삼성도 내가 합치도록 도와줬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들이다"라며 승마협회장이던 박상진 삼성전자 전 사장을 독일로 '소환'하기도 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박 전 사장은 "결정하시는 대로 지원해드리겠다"며 최씨에게 사과했다.

이후 여권상 말 주인으로는 매도인 등의 이름이 쓰였다.

지난해 1월에도 최씨는 박 대통령을 통해 올림픽 출전용 말 구매를 요청해 도합 20억원을 훌쩍 넘는 '비타나V'와 '라우싱1233'이라는 말도 삼성에서 받았다.

지난해 7월 말 언론 취재로 거래가 드러날 위기를 맞자 박상진 전 사장 등은 8월 하순께 말 세 마리를 덴마크 중개업자에게 판다는 내용의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최씨 측이 아닌 삼성전자가 말을 소유하다 매각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삼성이 실질적으로 대금을 받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또 다른 허위 계약이 동원됐다고 특검은 파악했다.

9월엔 '비타나V' 등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보도에 등장하자 최씨 측이 삼성과 상관없는 말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고자 다른 말로 교환하기까지 했다.

최씨는 비덱스포츠 자금으로 차액만 내고 '비타나V'와 '살시도'를 '블라디미르'와 '스타샤'라는 말로 바꿨다.

특검은 뇌물 거래를 삼성-코어스포츠의 용역계약으로 가장한 부분, 지난해 8월 이후 '말 세탁' 부분에 대해 최씨와 이 부회장 등에게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의혹이 불거진 초기부터 '말은 회사의 자산으로 보유하다가 팔았으며, 언론 보도 이후 최씨 측을 우회 지원한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또 "블라디미르 구입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해왔다.

삼성은 "삼성과 코어스포츠간 컨설팅 계약은 허위가 아니므로 재산 국외도피가 아니다.

용역계약은 외환거래 신고 대상이 아니다"라며 "용역료가 뇌물임을 전제로 기존 사실관계에 새로운 혐의를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실제로 마필을 구입·소유·매각했으므로 허위계약이 아니어서 범죄수익 은닉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 부분도 삼성의 마필 구입·매각이 뇌물이라는 주장을 전제로, 기존 사실관계에 새로운 혐의를 적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song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