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1천433곳 '우후죽순'…전부 현금거래 '탈세' 논란
전문가 "지나친 집착·몰입은 중독·범죄로 이어질 수 있어"


이 정도면 가히 '범죄의 온상'이라 부를 만하다.

지난해 11월 전국적으로 500곳이던 것이 3개월 만인 지난달 1천400여곳으로 급증한 '인형 뽑기방' 얘기다.

10대와 20대 등 젊은층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뽑기방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현금교환기 지폐를 훔치고, 뽑기 어려운 인형을 소유하기 위해 비좁은 퇴출구에 몸을 구겨 넣어 훔치다 적발돼 절도범이 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기계 속 인형을 싹쓸이한 남성에 대해 '절도범', '달인' 논쟁을 불러왔다.

이 과정에서 쉽게 뽑히지 않도록 확률을 조작해 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확산됐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집착은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게임 몰입 자제를 당부했다.

◇ "인형 뽑기방은 범죄의 온상"…'인형 보관함에 들어가고 현금 훔치고'

기계에 들어가 인형을 빼내는 경우는 대부분 쏟아부은 돈에 비해 결과물이 초라할 때다.

지갑이 '탈탈' 털린 만큼 고액을 쓰고도 인형 하나 뽑지 못하니 본전이 생각나 기계에 들어갔다고 변명한들 이는 명백한 절도죄로 형사 처벌 대상이다.

지난달 18일 충북 청주에서 인형 뽑기 기계 퇴출구로 몸을 넣어 인형을 훔친 A(14)군 등 중학생 5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마른 체형에 약 130㎝의 작은 키인 A군은 작고 유연한 신체를 이용해 가로 30㎝, 세로 30㎝ 크기 퇴출구에 머리부터 몸을 집어넣어 진열된 인형 7개를 꺼내 훔쳤다.

지난 1월 25일에는 광주 동구 충장로의 한 뽑기방에서 B(19)군이 기계의 인형 퇴출구 안으로 몸을 집어넣어 인형 7개를 훔쳤다.

B군은 "술을 마신 뒤 무인 뽑기방에서 3만원을 쓰고도 인형을 뽑지 못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인천시 서구 석남동에서 한 20대 여성이 인형이 잘 안 뽑힌다는 이유로 만취해 기계 안으로 기어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해 꼼짝없이 갇혔다.

이 여성은 119구조대에 의해 구조됐지만 망을 봐준 친구와 함께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뽑기방에 설치된 현금교환기 지폐가 범행 표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23일 뽑기방 현금교환기를 공구로 뜯고 현금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C(34)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지난달 21일 오전 4시께 순창군 순창읍 한 뽑기방에서 준비한 공구로 현금교환기 2대를 파손한 뒤 현금 300여만원을 훔쳤다.

그는 지난달 13일부터 당일까지 남원, 부산, 경북 칠곡 지역 뽑기방을 돌며 같은 수법으로 4차례에 걸쳐 450여만원을 훔친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 '우후죽순' 뽑기방 업체…탈세·확률조작 등 불탈법 '만연'

뽑기방 업체들의 불·탈법 사례도 눈에 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뽑기방은 1천433곳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1월(500곳)보다 2.8배 늘어난 것이고, 지난해 2월(21곳)보다 68배나 증가한 것이다.

전부 현금 거래다 보니 자연스레 '탈세' 의혹이 제기된다.

대전에서 뽑기방을 운영했던 한 남성은 "게임기나 인형 등은 모두 현금으로 거래한다"며 "거래 규모가 엄청 큰 데 비해 세금은 거의 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들려줬다.

이 남성은 "요즘 유행하는 뽑기방은 업주가 사업자 등록을 했더라도 인형을 사올 때 현금으로 거래하고, 고객도 현금을 넣고 뽑기 때문에 신고할 게 없다"며 "주말 하루 700만∼800만원 이상, 한 달 평균 1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모두 탈루소득"이라고 지적했다.

인형 뽑는 기계의 집게 힘을 줄이고 떨리게 변조한 업주도 무더기 적발됐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전국 500여곳의 뽑기방 중 무작위로 144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위반업소 101곳을 적발했다.

사법 처리 대상인 개·변조는 12곳으로, 등급 분류 받을 당시 인형 등 경품을 집어 올리는 기계의 힘을 줄이거나, 크레인이 갑자기 흔들리도록 변조한 것이다.

경품이 잘 안 뽑히다 보니 '조이스틱'을 조작해 인형 210개를 싹쓸이해 간 사례가 시중에서 단연 화제가 됐다.

지난달 6일 대전 서구에서 이모(29)씨 등 20대 남성 2명이 인형뽑기 기계 5개를 조작해 인형 210개(210만원 상당)를 모두 뽑아 가져간 것이 적발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씨는 기계의 조이스틱을 특정 방식으로 조작해 인형을 들어 올리는 집게의 힘을 강하게 해 뽑기 확률을 높였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행위를 놓고 인형 뽑기가 뛰어난 '생활의 달인이냐', 인형 뽑기방 주인의 재산권을 침해한 '범죄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경찰은 이씨 등이 인형을 가져간 방법이 처벌 대상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관련 법을 검토하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 "지나친 집착·몰입은 범죄로…자제 당부"

전문가들은 집착이 심해 지나칠 경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게 된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이들은 그동안 발생한 인형 뽑기 관련 범죄의 대부분이 '지나친 집착'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 적은 비용으로 예쁜 인형을 뽑았을 때 일종의 '힐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며 "하지만 지나치게 집착하면 중독되거나 심지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해중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는 "운만 좋으면 투자한 돈에 비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형 뽑기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뽑기방이 무인으로 운영되다 보니 인적이 드문 밤까지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많아 범죄의 목표가 된다"고 지적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kj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