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나 광고대행사로부터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던 전·현직 KT&G 사장에게 법원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3일 법원과 KT&G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지난달 초 광고대행사로부터 수주 청탁과 함께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백복인(51) KT&G 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금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권모 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같은 달 17일 서울고법 형사4부(김창보 부장판사)는 부하 직원과 협력업체 등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민영진(59) 전 KT&G 사장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돈을 건넸다고 자백한 부하 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의 진술이 허위를 가능성이 있다고 본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민 전 사장은 2009∼2012년 협력업체와 회사 관계자, 해외 바이어 등에게서 총 1억7천여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월 구속기소됐다가 같은 해 6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업계에서는 전·현직 사장이 거의 동시에 금품 수수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KT&G 스캔들'이 법원의 잇단 무죄 선고로 급반전하면서 이 사건의 배경에 정치적 복선이 깔렸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KT&G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업계 전문가들은 특히 2015년 10월 이뤄진 신임 사장 공모 과정에 미심쩍은 배경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시했다.

당시 임기가 남아있던 민 전 사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자기 물러나면서 신임 사장 공모 절차가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친박 실세 인사가 자신의 측근을 낙하산으로 앉히려 했으나 KT&G 공채 출신인 백 사장이 입후보 의사를 굽히지 않으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는 것이다.

결국 사내·외 공모 절차를 거친 끝에 당시 KT&G 부사장이던 백 후보가 사장으로 선출됐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실세 인사의 입김으로 KT&G 주요 인사들에 대한 사정이 시작됐다는 것이 KT&G 안팎의 일반적 시각이다.

KT&G 관계자는 "당시 임기가 남아있던 민 전 사장이 갑자기 물러나고 공모 절차를 통해 내부 인사인 백 사장이 후임으로 선출되면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됐다"며 "정확한 배경은 알기 어렵지만 최근 잇따라 무죄 판결이 난 걸 보면 무리한 기소가 아니었나 싶다"고 말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재계 전문가는 "친박 실세 인사가 자신의 측근을 낙하산으로 앉히려다 백 사장 등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자 사정기관이 움직인 것으로 안다"며 "두 사람 모두 무죄 선고를 받은 것만 봐도 무리한 수사였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민 전 사장에 대해서는 대법원 상고, 백 사장에 대해서는 항소한 상태라면서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사실 관계 자체를 다투는 만큼 상급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passi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