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졸혼했어요"
“30년을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 살았으면 남은 30년은 ‘나’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결혼 30년차 가정주부 이민영 씨(57)는 최근 남편에게 ‘졸혼(卒婚)’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이혼하자는 거냐’며 펄쩍 뛰던 남편도 ‘그동안 가족을 위해 사느라 고생했으니 각자의 삶을 찾자는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들은 오는 10월 결혼 30주년 기념식을 ‘결혼 졸업식’으로 삼기로 했다. 이씨는 “남편과 ‘서로 학사모라도 씌워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졸혼을 생각하는 중년 부부가 늘고 있다. 졸혼은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부부가 법적으로는 이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에 쓴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했다.

졸혼의 이유는 다양하다. 퇴임교사 김모씨(62)는 부인과 ‘인생 2막’ 계획이 달라 졸혼을 택했다. 김씨는 경남 창원으로 귀농하고 부인은 서울에 남아 음식점을 열기로 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법적 이혼을 택하지 않는 이유다. 졸혼을 계획 중인 유모씨(54)는 “살고 있는 집이 부부 공동명의로 돼 있어 이혼하면 처분 문제로 귀찮아질 것”이라며 “부인과 한 집에 살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혼 기록이 자녀의 취업이나 결혼에 불이익을 줄까봐 졸혼을 택하는 부부도 있다.

졸혼은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달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9.2%가 졸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휴혼(休婚)을 택하는 부부들도 있다. 휴혼은 대학생들이 휴학하는 것처럼 결혼생활을 ‘쉬어간다’는 뜻이다. 6개월, 1년 정도 기한을 정해두고 부부가 각자 떨어져 지낸다.

‘부부는 한 방, 한 집’에 살아야 한다는 인식 역시 약해지고 있다. 서울 목동의 공인중개사 김모씨(62)는 “몇 년 전만 해도 부부가 원룸을 문의하는 경우 대부분 자녀의 자취집을 구하는 목적이었는데 요즘은 한 명이 따로 나와 살 공간을 찾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통계청 조사 결과 40~50대 1인 가구는 2000년 54만1115가구에서 2015년 172만7000여가구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1인 가구에서 40~5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22.3%에서 33.2%로 높아졌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