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월수입이 예전 연봉"…대기업 관두고 유튜버로 제2 인생
직장인들은 “내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고 말한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나갈 돈만 많아진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부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본업인 회사일과 부업을 겸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도 일어난다. 돈이 궁해 시작한 부업에서 자신도 몰랐던 적성을 찾는가 하면, 부업으로 버는 수입이 월급을 넘어서면서 퇴사를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부업에 얽힌 김과장 이대리들의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부업 돈 되는데…결혼 걱정에 퇴사 못 해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를 5년째 다니는 김모씨(32)는 요즘 회사를 그만두는 문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대학 시절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체를 운영했을 정도로 장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부모님 뜻대로 취업에 도전해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곧 지쳤다. 결국 자기 아이템을 갖고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에 나섰다.

김씨가 선택한 일은 비교적 적은 자본으로 안정적 현금 창출이 가능한 골목밀착형 업종인 ‘동전노래방’이었다. 폐쇄회로TV(CCTV)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무인형 점포여서 ‘투잡’을 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자영업자 생활을 수년째 이어갔다. 어느덧 부업으로 버는 돈이 본업의 두세 배를 넘어섰다. 이때부터 갈등이 시작됐다.

“돈만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죠. 하지만 곧 결혼도 해야 하는데 사윗감이 동전노래방 주인이라고 하면 뭐라고 보겠어요.” 결국 김씨는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결혼할 때까지만 회사에 계속 다니기로 결심했다.

‘투잡’ 뛰다 전업까지

반대로 ‘투잡’을 뛰다 전업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구매팀에서 근무하던 이혜강 씨(30)는 파워블로거였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파워포인트(PPT) 활용법을 알려주는 블로거 ‘친절한혜강씨’로 유명했다. 그의 남편이자 같은 회사 전략기획팀에 근무하던 국동원 씨(38)도 영상에 관심이 많았다.

두 사람은 ‘한 번 사는 인생, 좋아하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불안한 미래가 걱정됐던 국씨는 회사 일과 유튜브 콘텐츠 제작 일을 병행해 보기로 했다.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면서 콘텐츠를 구상했다. 그는 조카들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장난감으로 다양한 놀이를 보여주는 ‘말이야와 친구들’이라는 채널을 개설했다. 4개월 동안 유튜브 수익만 월 100만원에 달했다.

가능성을 확인한 두 사람은 차례로 회사를 그만뒀다. ‘말이야와 친구들’은 현재 유튜브 구독자 수 44만명, 전체 동영상 조회수 1억7000만건을 기록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생활용품 회사에 다니던 김모씨는 부업에서 적성을 찾았다. 그는 10년 전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김씨가 공부보다 더 빠진 건 맥주였다. 학교 인근 펍에서 파는 수제맥주 맛을 잊지 못했다. 그는 컨설팅회사에 취업해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맥주에 관심을 가졌다. 회사를 다니면서 후배들이 여는 펍에 투자하기도 하고, 집에서 수제맥주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맥주 전문가란 소문이 나니 회사에서도 주류 관련 프로젝트가 생기면 꼭 김씨를 포함시켰다. 때마침 해외 근무 기회를 잡게 된 김씨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지원했다. 현지에서 회사를 다니며 그는 저녁에 본격적으로 수제맥주 공부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친구가 운영하는 수제맥주 전문 펍에 투자도 했다. 주변 사람들이나 일로 만난 사람들을 펍에 데려가면서 입소문도 났다. 펍 성공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는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펍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수입은 전보다 덜하지만 보람있다"고 말했다.

부업에서 제2의 인생을 찾는 경우도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던 정모씨는 40대 초반이던 몇 년 전 대학 동문 네 명과 대형 중국집을 창업했다. 출렁대던 증시 탓에 항상 불안정한 직장 생활을 하던 그는 직장을 다니면서 지분 투자만 했다. 여의도에 차린 중국집은 인기를 끌었고 돈도 많이 벌었다. 친구들은 속속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각지에 분점을 냈다. 정씨도 2년 전 회사가 명예퇴직 신청을 받자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명퇴금까지 챙긴 뒤 분점을 하나 차렸다. 정씨는 “50대에 회사 다니는 사람은 임원 승진 아니면 답이 없는 게 현실인데, 친구들을 믿고 투자한 게 성공해 제2의 인생을 찾았다”며 웃었다.

부업하면서 회사 일도 척척

부업이 본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경우도 있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장모 과장은 지난해 우연히 투잡을 시작했다. “프랑스에 여행을 자주 가는데 괜찮은 아이템이 하나 있으니 우리가 한번 수입해서 팔아보자”는 학교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여서다. 아이템은 겨드랑이에 붙이면 옷감이 땀에 젖는 것을 막아주는 ‘겨드랑이 패드’였다. 장 과장은 “마침 직장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던 터라 투잡이 잘되면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장 과장은 3000만원 정도 자본금을 모아 즉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여름철 수요를 겨냥해 겨드랑이 패드를 출시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6개월 만에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 과장은 회사를 그만두지 않기로 했다. 부업이 잘되니 회사 일도 전보다 재밌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수입이 넉넉해지니 회사에서 힘들던 것들이 이제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언제든 눈치보지 않고 퇴사해도 된다는 생각에 부담이 줄어든 것 같아요.”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정모씨(38)는 영업할 때 겪는 스트레스가 부업으로 다 풀린다고 했다. 그는 부업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다. 5년 전 집 장만을 위해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가 종잣돈을 마련해 투자에 뛰어들었다. 아파트 분양권에 투자하고, 기존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사는 ‘갭 투자’도 했다. 외근이 많은 영업사원이었기 때문에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괜찮은 매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오면, 잠깐 들러 구경하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다. 한번 매매하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정도 보유한 뒤 팔았다. 2000만원이었던 투자금은 현재 5억원으로 늘었다.

이수빈/오형주/고재연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