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9일 갑자기 ‘침묵 모드’로 들어갔다. 이례적으로 정례브리핑을 생략한 것. 지난해 12월21일 현판식을 하고 공식 출범한 특검팀은 새해 첫날과 설 연휴 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일요일에도 브리핑을 했다. 특검팀은 “언론에 공표할 사안이 없다”고만 했다.

이 부회장을 이틀 연속 조사한 특검이 국민적 관심 사항에 침묵으로 일관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 측이 뇌물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데다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도 여의치 않은 등 특검이 수사에 차질을 빚자 브리핑을 취소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특검·헌재 '운명의 한 주'] '이재용 뇌물혐의' 팽팽한 대치…특검, 매일하던 브리핑도 취소
◆‘39권 수첩’ 놓고 공방 예고

특검 쪽에서는 이날 박 대통령이 삼성의 바이오 공장 건설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이 부회장 구속에 결정타가 된 것으로 알려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39권이 근거였다. 안 전 수석의 2015년 12월29일자 수첩에 박 대통령을 지칭하는 ‘VIP’ 표시 밑에 ‘바이오시밀러→기초? contents(콘텐츠)’라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같은해 12월21일 삼성은 인천 송도경제자유구역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 기공식을 했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참석해 발파 버튼을 눌렀다.

특검 측은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세 차례 독대를 전후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지원이 있었는데 바이오 지원 역시 이의 연장선에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전날에 이어 이날 조사에서도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정부로부터 어떤 특혜도 받은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 관계자는 “아직 이 부회장 진술에 특별한 변화는 없다”고 전했다.

특검은 지난 16일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과 관련한 특혜 의혹도 구속영장에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은 ‘의혹의 진원지’인 안 전 수석의 수첩 39권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고 있다. 지난 설 연휴 직전 안 전 수석 보좌관이었던 청와대 현직 행정관 김모씨에게서 수첩을 입수하는 과정이 불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앞서 이 부회장 영장실질심사에 7시간30분이나 소요된 것도 이를 둘러싼 양측 간 견해 차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법원이 안 전 수석 수첩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이 부회장 관련 대부분 증거 자료는 ‘무용지물’이 된다.

◆“롯데, 안 전 수석과 53차례 통화”

롯데와 관련한 추가 의혹도 제기됐다. 특검이 검찰 특별수사본부로부터 넘겨받은 수사 기록에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롯데 수뇌부와 안 전 수석이 주고받은 전화와 문자메시지 내역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안 전 수석과 연락한 롯데 측 인사는 신동빈 회장, 고(故) 이인원 부회장, 황각규 사장(정책본부 운영실장), 소진세 사장(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 등이다.

이들과 안 전 수석의 전화 및 문자메시지 송·수신 횟수는 53차례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검찰이 롯데 본사와 계열사, 신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공개수사에 착수한 지난해 6월10일 이전에 이뤄진 것은 50차례다. “최순실 씨 측이 지난해 5월 말 경기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명목으로 롯데로부터 70억원을 받아놓고 압수수색 직전에 돌려준 게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특검 측 주장이다.

특검은 롯데가 안 전 수석을 통해 검찰 내사 정보를 입수했는지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다만 특검의 1차 수사기간이 오는 28일로 끝나기 때문에 수사기간 연장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4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만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특검 수사기간 연장 요구를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황 대행 측은 “기존과 달라진 게 없다”며 연장 불승인 방침을 시사했다.

김병일 /김기만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