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확산 주범 멧돼지?…AI로 중단된 수렵이 '화근'
멧돼지도 구제역 걸리는 우제류, 감염되면 바이러스 전파 매개체
겨울철이면 멧돼지가 도심이나 주택에 출몰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산속에서 먹잇감을 찾다가 민가 부근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농경지에서는 멧돼지가 뿌리를 캐 먹으려고 땅을 파헤쳐놓은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충북 보은군 관계자는 "과수 줄기를 갉아먹거나 뿌리 부분을 파헤쳐 놨다는 신고가 겨울에도 접수된다"며 "수렵이 중단된 이후 멧돼지나 고라니 개체 수가 꽤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보은에서는 작년 11월 17일 408㎢의 순환수렵장이 개장했다.
2011년 11월부터 석 달간 수렵장이 운영된 후 5년 만에 문을 다시 열었지만 정부 지침에 따라 불과 한 달 만에 폐쇄됐다.
AI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렸던 2014년 때의 2.4배에 달하는 3천312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되는 등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나온 불가피한 조치였다.
총소리에 놀란 철새가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 AI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영농철이 시작되지 않아 큰 피해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수렵 직후 뜸했다가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는 게 보은군의 설명이다.
문제는 멧돼지나 고라니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라는 점이다.
발굽이 두 쪽인 우제류라는 점에서 구제역에 걸릴 수도 있다.
멧돼지나 고라니가 컴컴한 밤에 먹이를 찾아 소 사육농장 주변을 오가면서 구제역 바이러스를 묻혀 이곳저곳 퍼뜨렸을 개연성도 있다.
통계상 송아지나 새끼돼지의 경우 구제역 폐사율이 최대 55%에 달한다고 하지만 큰 소나 돼지가 죽는 일은 거의 없다.
하물며 가축보다 튼튼한 야생동물이 구제역에 걸려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축산 방역 당국의 얘기다.
멧돼지나 고라니가 구제역에 걸렸다면 자연 치유를 위한 항체가 형성되기 전인 7∼10일간 농장 주변을 오가며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석 달간 순환수렵장을 운영하며 포획하는 멧돼지는 1개 군의 경우 300∼400마리, 고라니는 1천200∼1천300마리에 달하는데, 이번 겨울에는 수렵이 중단되면서 이만큼의 개체 수가 줄지 않은 셈이다.
엽사들로 구성된 야생동물 자율구제단이 신고 접수 후 포획에 나서지만 이 역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구제역 방역 차원에서 멧돼지·고라니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과 엽사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도망가 구제역 바이러스를 더 넓게 퍼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유해 야생동물을 한 마리라도 더 포획해야 농작물 피해를 줄일 수 있어 자율구제단 운영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구제역이 우후죽순처럼 터지다보니 야생동물까지 확산 주범으로 꼽히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운 일이지만 멧돼지와 고라니가 구제역 바이러스를 퍼뜨릴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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