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생 이모씨(26)는 다음달 한국 취업 시즌에 맞춰 귀국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지난해 4월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현지 증권사에서 인턴 생활도 했다. 하지만 유학생이 대학 졸업 후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선택적 실무연수 비자(OPT)’ 만료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안 그래도 경기가 어려워 미국에서 직장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인데 취업비자 문턱까지 높아진다니 답이 없다”며 “다른 유학생도 한국으로 ‘유턴’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유학생 모임에선 다들 귀국 얘기만”

트럼프 반이민정책에 미국 유학생·이민업체 '초비상'
15일 미국 이민·유학업체 등에 따르면 한인 유학생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크게 동요하고 있다. 미국 내 한인 유학생 수는 6만1000여명(2016년 11월 기준)이다. 이 중 OPT를 받아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 유학생은 11.5%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2차 반이민 행정명령이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엔 외국인 유학생의 미국 취업을 위한 OPT 제도를 폐지하고, 취업비자(H-1B) 발급을 줄이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H-1B 발급을 위한 연봉 기준을 현재 6만달러 이상에서 10만~13만달러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엔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 주도로 미국 내 합법적 이민자 수를 10년 내 절반으로 줄이자는 ‘고용 강화를 위한 미국 이민 개혁안(RAISE)’도 발의됐다.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신모씨(27)는 “취업비자 하한선이 10만달러면 미국 대학 조교수 연봉인데 그 기준을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요즘 유학생 모임에선 다들 귀국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유학생 인터넷 커뮤니티는 ‘부자 유학생은 대학원에라도 가지만 아닌 사람들은 꼼짝없이 귀국해야 한다’ ‘한국도 취업이 힘들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글로 가득하다.

매년 1만명가량의 유학파가 국내 구직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이민전문 법무법인 관계자는 “미국 유학생 중 어학연수자(7%)를 제외한 93%가 잠재적 구직자”라며 “유턴 우려가 현실이 되면 상당수 유학파가 국내 구직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 무산 될까 밤잠 설쳐”

미국 이민을 신청해놓은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미국 이민은 신청부터 승인까지 비자 종류에 따라 짧게는 1년 반에서 길게는 10년까지 걸린다. 단계적으로 가족 이민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미국 영주권을 취득한 박모씨(43)는 “먼저 미국에 와서 자리를 잡은 뒤 한국에 있는 딸을 데려올 계획이었는데 반이민 정책 여파로 자칫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 입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서모씨(29)는 “미군 복무 경력은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로 통한다”며 “차라리 미군에 입대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민·유학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서울 강남의 한 이민업체 대표는 “지난주부터 미국 이민 신청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며 “이대로라면 다 망할 판”이라고 말했다. 유학업체 관계자는 “취업비자 문턱이 실제로 높아지면 유학업계에도 찬바람이 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정환/성수영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