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법원이 현대·기아자동차 사내하청 직원들이 제기한 정규직 지위확인 소송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부품 정리, 포장, 출고 등 이른바 ‘간접생산공정’ 직원들까지 모두 원청인 현대·기아차의 정규직으로 인정했다. 업계에선 “제조업에서 사실상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비상식적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2부는 10일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청 직원들의 근로자 지위확인 항소심에서 “원고들이 현대차와 기아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현대·기아차와 계약 관계에 있는 사내하청업체 직원들로, 현대·기아차와는 법적 관계가 없다.

현대·기아차는 사내하청을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직접공정과 포장·출고 등 간접공정에 활용해 왔다. 파견근로자 등의 보호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제조업에서 파견근로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제조업체들은 경기 변동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사내하청을 활용한다.

파견법은 제조업 등 파견이 금지된 업종에서 파견을 활용하면 원청의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파견과 사내하청 구분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정규직 확인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해 왔다.

대법원은 제조업에서 파견과 사내하청을 구분하는 요소로 △원청이 업무 지휘·명령을 하는지 △실질 생산공정에 투입되는지 △원청 업무와 하청 업무가 구분되는지 등을 꼽는다. 서울고법은 이날 판결에서 “간접공정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들도 전체 공장의 생산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하기 때문에 파견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날 법원 판단에 대해 “제조업 현장의 노동 경직성을 더욱 강화하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제조업체들이 공장 직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얘기로 일자리 공동화와 국내 투자 기피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별개로 기존 노사 간 합의를 성실히 이행해 사내하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1심 이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된 근로자들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소송 인원은 대폭 줄었다. 현대차 상대 승소자 수는 1심 1179명에서 이번에 159명(정년이 지난 인원 포함)으로 줄었다.

강현우/이상엽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