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주도로 문체부에 지시…'좌파 성향' 인사 걸러내기


정부가 특정 문화·예술인을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조직적으로 비토한 이유는 다양했다.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는 이념 성향은 물론 보수 정권의 정책 반대, 야권 정치인 지지 등은 바로 배제 대상이 됐다.

10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공소장을 보면 청와대는 김 전 실장의 주도 아래 2014년 문화·예술계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문화예술위원회 심의위원을 뽑는 과정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그해 2월 '예술위 심의위원 임명 때 과거 활동경력은 물론 이념편향 여부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가정보원 작성 문건을 모철민 당시 교육문화수석에게 전달하며 개선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해당 지시는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전달됐고 청와대와 문체부 간 조율 아래 심의위원 선정 절차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문체부는 3월 심의위원 후보자 105명의 명단을 첨부한 '문예기금 지원사업' 관련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청와대는 19명을 명단에서 빼라고 지시했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이들이다.

문학과 연극·무용·음악·전통예술계 인사가 망라됐다.

문학 분야 1순위 후보자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배제됐다.

민주노동당 지지 또는 시국선언·각종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노무현스토리제작비 모금·노무현시민학교강좌 등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활동을 한 한 인사도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대운하 건설 반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해직교사 철회 촉구, 한미 쇠고기 협정 폐기 촉구, 미국 규탄 성명, 국정원 국기 문란 비판, 문익환 목사 방북 헌정 등 배제 이유는 다양했다.

예술위의 '문화예술진흥기금사업 지원 심의 운영 규정'에는 위원장 주관 아래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심의위원을 위촉하게 돼 있지만 이런 규정은 유명무실화했다.

특검은 이러한 행위가 학문·예술의 자유 등을 보장한 헌법을 어긴 것은 물론 법으로 보장된 예술위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보고 김 전 실장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등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