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부산 해운대구에서 한 승용차의 광란의 질주로 26명이 죽거나 다쳤다. 운전대를 잡은 김모씨(54)는 뇌전증을 앓고 있었다. 뇌전증은 갑작스러운 발작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만성적 신경성 질환이다. 김씨는 사고 당시 뇌전증으로 인한 발작으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김씨의 과실이 뇌전증과 무관하다고 결론지었다.

이 사건으로 뇌전증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뇌전증 환자들을 아예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뇌전증, 약물치료로 70%가량은 회복…예상못한 '발작'…사회적 편견 없어져야
전문가들은 뇌전증은 관리만 잘 하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대원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심혈관계질환이 있는 사람이 심근경색으로 운전사고를 냈다고 심혈관계질환 환자들을 격리하자는 얘기와 같은 논리”라며 “뇌전증은 생활습관과 약물치료, 수술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뇌전증은 뇌신경 세포의 비정상적인 구조와 과도한 흥분으로 나타난다. 뇌전증을 직간접적으로 일으키는 원인은 선천성 질환, 뇌의 염증, 뇌종양, 뇌수막염, 뇌혈관질환 등 다양하다. 뇌전증의 주된 치료법은 약물 치료다. 항경련제로 뇌신경 세포의 비정상적인 활동을 억제한다. 약물 처방 이후 2년이 지나도 경련발작이 지속되면 수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서 교수는 “적극적으로 치료받으면 뇌전증 환자의 70%가량은 회복될 수 있다”며 “약물 치료만으로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도록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콜로라도 등 여러 주에서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운전을 허락한다”고 덧붙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뇌전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4만3898명이었다. 연령대별로는 70대 이상 고령 환자가 인구 대비 가장 많았고 그 숫자도 계속 늘고 있다. 이준홍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노인 연령층에서 뇌전증 발생률이 높은 것은 뇌졸중이나 퇴행 뇌질환 등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령화로 노년층 인구가 늘면 뇌전증 환자는 더 증가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뇌전증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뇌전증의 원래 이름은 간질”이라며 “과거엔 지랄병이라고도 불렸고 ‘뗑깡 부리다’라는 말도 일본어로 간질을 뜻하는 ‘뗑깡(癲癎·전간)’에서 나왔을 만큼 사회적 편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뇌전증을 방치하면 순간적 의식불명으로 추락 및 익사사고 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뇌전증 환자들이 편견 없이 치료를 받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