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넌 남자가 줄을 서, 넌 3년 연애 못해"…친구랑 점 같이 봤다 우정 금 갔죠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김 과장 이 대리’라고 점을 안 보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직이나 승진 관련 고민은 물론 연애 상담을 위해 점집을 찾는 직장인들이 의외로 많다. 폭넓은 정보유통이 가능해지며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모습도 나타난다. SNS를 통해 직장 동료들과 소통하며 용하다는 곳을 찾아다니고, 직접 점치는 법을 배워 직장 내 ‘공식 샤먼(무당)’이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탓도 있다. 국정 혼란에 올해 언제 대통령 선거를 치를지도 알 수 없고, 경기 하강에 금리 상승이 겹쳐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맞아 점집을 찾는 ‘김 과장 이 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 대리의 고민…“이직, 할까요 말까요?”

중소기업에 근무하던 김모씨(29)는 1년에 한 번씩 재미 삼아 용하다는 점집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점집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연애운’을 묻는 그에게 점쟁이는 “3년간 연애운은 없지만, 올해 이동운이 있다”며 “좋은 곳이니 무조건 옮기라”고 했다. 김씨는 “이사갈 계획도 없는데 웬 이동운?”이라고 시큰둥해하며 그의 말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한 달 후 동종 업계 대기업에서 이직 제안이 왔다. 고민하던 김씨는 점쟁이의 말을 떠올리며 이직을 결심했다. 빠른 결정 덕분에 훨씬 더 좋은 조건과 근무 환경을 약속받고 회사를 옮길 수 있었다. 김씨는 “젊은이들이 점집에 가는 이유는 불안한 미래 때문”이라며 “점쟁이도 그런 불안한 마음을 알고 던진 조언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변화에 대한 확신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직 때문에 사주를 보러 갔다가 이름을 바꾼 직장인도 있다. 인천의 한 제약회사에 다니는 최모씨는 지난달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회사에서 은밀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막상 결정을 내리려니 쉽지 않았다. “고민하지 말고 당장 옮기라”는 지인도 있었지만 “찬밥 대우만 받을 것”이라며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민 끝에 최씨는 올해 초 서울 강남의 유명한 점집에 사주를 보러갔다. 점쟁이는 “올해 이동수와 함께 출세운, 승진운이 겹쳐 있다”며 “이직하되 이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개명을 하지 않고 바로 이직을 하면 출세운과 승진운이 모두 달아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최씨는 며칠 뒤 점집을 다시 찾아가 개명한 뒤 회사를 옮겼다. 그는 “고려할 게 너무 많아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는데 속시원하게 ‘이직하라’고 얘기해 줘서 마음이 편해졌다”며 “업계에서 이직한 사람들의 근황이 간간이 떠도는데, 이름을 바꾸니 그럴 일도 없었다. 점집에서 제대로 된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박 과장은 우리 회사 ‘공인 점쟁이’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다니는 김모씨(34)는 올해 들어 사주 공부에 푹 빠졌다. 지난해부터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 유명하다는 점집을 몇 군데 찾아다닌 게 계기가 됐다. 점쟁이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고, 그러다 보니 사주 결과를 의심하는 게 싫어 스스로 풀어보기로 한 것이다.

역술인이 사용하는 달력인 ‘만세력’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생각보다 쉽게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 김씨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면서 재미를 붙여갔다. 풀이방식에도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인터넷을 참고하며 자신만의 사주풀이법을 익히고 있다. 김씨는 “사주공부가 생각보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예 취미로 삼아보려고 한다”며 “기회가 되면 유명한 전문가를 찾아가 정식으로 공부도 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의 점보기를 절대 직장에 알리지 말라”고 조언하는 직장인도 있다.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박모 과장은 연초만 되면 바쁘다. 회사 일 때문이 아니다. “올해 내 운세가 어떻겠냐”는 동료 직원 때문이다. 박 과장을 통해 ‘공짜 타로점’을 보려는 의뢰가 잇따르는 탓이다. 시작은 3년 전 회사 워크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창 타로 공부에 빠져 있던 박 과장은 재미로 동료 몇 명의 타로점을 봐줬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뒤 그가 예견한 대로 동료들의 연애사와 가정사가 풀렸다.

“박 과장의 타로점이 그렇게 용하다더라”는 소문이 사내에 퍼지면서 이듬해 1월부터 신년운을 보려는 의뢰가 잇따랐다. 그는 “타로를 많이 봐주면 피곤한 데다 정작 봐주는 사람의 운은 안 풀린다는 얘기가 있어 찜찜한 게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봐주던 걸 그만둘 수도 없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동료끼리 단체로 사주보러 가요

마케팅 업체에 다니는 김모씨는 지난주 팀원 4명과 단체로 타로점을 보러 갔다. 이색적인 회식 문화를 고민하다가 “새해인데 같이 타로나 보면 어떻겠냐”는 막내 직원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김씨는 처음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아무리 평소 팀원 간 화합이 좋다지만 회사 사람들끼리 가면 뭐가 재미있겠느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신선했다. 각자 개인적인 고민을 얘기하며 시작하는 타로점의 특성상, 서로의 관심사나 고민거리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됐다. 애정 문제부터 건강, 자녀 진로까지 다양한 고민이 나왔다. 김씨는 “내년에도 신년 회식은 타로점을 보면서 시작하기로 했다”며 “새해 분위기를 느끼면서 친목을 도모하기에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대 상황도 있다. 화장품 업체에서 일하는 한모 대리는 연초 직장 동료 두명과 함께 사주를 보러갔다. 서울 인사동에 유명한 사주카페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이들은 각자 연애운을 물었다. 그런데 셋 중 한 대리를 포함한 두 명은 운수 대통이고 한 명은 운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도 3년 동안 연애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한 대리에게는 가만히 있어도 멋진 남성이 찾아온다고 했다. 한 대리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사주카페를 나서면서 셋 간에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상반된 결과 때문에 동료 한 명의 감정이 상해버린 것이다. 한 대리는 “상한 기분을 풀어주느라 며칠 동안 애를 먹었다”며 “재미로 사주를 보러갔다가 동료와 의만 상했다”고 했다.

박상용/정지은/이수빈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