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마녀, 지독한 마녀, 헌법재판소
“헌법은 우리의 미래이며, 희망”이라고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현충원 방명록에 썼다. 헌재소장이 저런 비문(非文)을 쓸 리 없다 싶어 그의 경력을 찾아본다. 역시 판사는 아니다. 이 문장은 주어와 술어가 조응하지 않는다. ‘미래와 희망’이 되려면, ‘어떤 헌법’ 등의 한정어가 있어야 한다. 우리 헌법은 87민주화 혼란 속에서 개정돼 온갖 좋은 말은 다 써놓고 있는 모순덩어리다. 내적 통일성을 갖춘 지적 생산물이라 하기 어렵다.

법은 그 자체로 논리적 구조물이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 탄핵소추를 다루는 헌재가 보여주는 모습은 덤벙대고, 앞뒤 없고, 여론추수적이다. 나중에 문장도 안되는 결정문을 내놓을까 그것이 두렵다. 헌재는 김영란법을 다루면서도 대중 여론을 합헌의 근거 중 하나로 인용했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탄핵 심리 일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이 중요한 심판의 첫 번째 변론은 바로 오늘(3일)부터 시작된다. 이틀 뒤인 5일에는 안봉근 이재만 윤전추 이영선에 대한 2회 변론이, 오는 10일에는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에 대한 3회 변론이 잡혀 있다. 이런 정도의 신속한(?) 재판은 북한 김정은의 장성택 재판 외에 전례를 찾기 어렵다. 헌재 측은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라고 말했지만 대통령 탄핵사건을 이런 식으로 서둘러 몰아가는 것은 결론을 예단한 짜맞추기 재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측 변호인들이 읽어야 하는 공소장만 3만2000페이지다. 헌재는 변호사가 많으니 나눠 읽으면 시간은 충분하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말문을 닫아야 하나. 재판관들도 3만2000페이지를 분야별로 나눠 읽었을 뿐이라는 고백으로 들린다. 어이가 없다. 탄핵 관련 13개 사건은 모두가 연결되어 분리할 수 없다. 박한철 소장의 임기가 1월 말이라는 것 때문에 재판을 서두른다면 더욱 불가하다. 탄핵사건은 헌재소장이 이임하기 전에 처리해야 할 그런 잔무처리가 아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보충자료라는 것도 그렇다. 탄핵을 세월호 해원 굿판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면 세월호와 탄핵은 실로 부당한 결부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경일 정장을 슈퍼맨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처형하라는 미개한 재판이 되고 만다. 대통령은 원래 형사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 비극의 날 김경일 정장의 순찰항로가 마침 남쪽을 향했고 그 덕분에 (3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172명이나 구조할 수 있었던 숨은 공로는 모두 허공으로 날아갔다. 영웅이 됐어야 할 김경일 정장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

대통령은 구조실패를 단정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아주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다. 중대한 오판이었다. 지금 대통령을 내쫓는 것으로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샤먼적 굿판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면 헌재는 탄핵사유에서 세월호 항목부터 배제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보충자료라니. 여성 대통령의 일정이 그렇게도 궁금하다는 것인지.

기실은 특검이라는 것부터가 위헌적이다. 대통령을 수사할 특검을 야당이 추천토록 한 이 제도는 유죄를 정해놓고 짜맞추는 중세 마녀재판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유죄 입증을 직무로 하는 국가 기관이라니! 근대적 사법제도라 할 수 없다. 마녀재판에서는 마녀라고 자백하면 당연히 마녀다. 지독한 고문에도 자백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지독한 마녀’가 된다. 온갖 의혹보도와 청문회의 증언들이 서로 뒤틀리자 언론들은 곧바로 ‘지독한 마녀’ 딱지를 붙였다. 우병우 김기춘이 지독한 마녀들이다. 최순실 사건의 발단이 된 의혹의 태블릿PC는 아직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원천적으로는 국회의 탄핵사유부터가 대부분 엉터리다. 국회는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헌법위반과 법률위반도 구분하지 못했다. 이런 기소장을 들고 헌재는 무엇을 재판한다는 것인가. 실로 저질 시리즈다. 정유라는 졸지에 고교 졸업장까지 박탈당해 중졸자가 되었다. 특검은 그에게 테러범에게나 붙일 만한 ‘국제적색수배령’을 내렸다. 소설가 이인화는 성적을 잘 주었다고 ‘구속’되었고, 문형표 전 장관은 할 말을 했다는 이유로 역시 ‘구속’되었다. 공포의 대왕이 내려왔다. 지금 대한민국에.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