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무로의 한 당구장. 사진 전형진 기자
서울 충무로의 한 당구장. 사진 전형진 기자
"나도 담배를 피우지만 당구장 금연은 찬성이다."

지난 27일 찾은 서울 충무로 소재 한 당구장 업주의 말이다. 당구장업계가 금연 구역 지정을 환영하고 있다. 건전한 체육시설로 변화하기 위해 일시적인 매출 감소와 흡연실 설치 비용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당구장 금연으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보고 있다. 특히 당구장에 대한 인식 변화와 당구 저변 확대 같은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다.

◆ "환경 좋아지니 반가운 일"

지난 달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내년 12월부터는 당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당구장으로 등록·신고된 2만2000여 곳과 스크린 골프장 8600여 곳이 금연 구역으로 지정된다. 단 실내에 별도의 흡연실을 설치하면 이곳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충무로에서 당구장을 운영 중인 A씨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다른 업종 선례를 봤을 때 적응하는 기간이 지나면 매출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더 빨리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당구장을 운영하는 B씨도 "흡연실 만들 자리를 확보해 뒀다"며 "공간이 줄어들고 지출도 생기겠지만 손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구장을 운영하는 C씨는 흡연자다. 하지만 그는 "당구장 환경이 개선되니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당구장 금연을 반기는 이유는 근무 환경과 관련 깊다. 당구장 경우 하루 종일 간접 흡연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비흡연자 뿐 아니라 흡연자에게도 담배 연기는 고역이다.

인식 변화에 대한 기대도 당구장 금연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당구장은 실내 체육시설로 분류하지만 당구가 스포츠라는 인식은 크지 않다.

당구장업계에서는 금연 구역 지정을 통해 당구장이 유해시설이란 이미지를 벗고, 당구가 건전한 스포츠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김동현 대한당구협회 회장은 "협회는 대승적 차원에서 당구장 '금연' 지정에 찬성 의견을 냈다"며 "이젠 당구장도 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 전형진 기자
사진 전형진 기자
◆ "금연 했더니 가족 손님 늘어"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한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은 당구장 금연을 통해 당구 저변이 넓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족 단위 당구 문화가 확산되고 여성 이용자도 증가할 수 있단 전망이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법안 발의 직후 당구장 업주들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항의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오히려 빠른 진행을 촉구하는 응원·격려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PC방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때 업주들은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고 반발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같은 선례 때문인지 법안을 검토하고 현황을 조사할 때 당구 업계에서도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민원 전화를 받다 보면 '금연이 사회의 기본'이라는 정책적 환경의 변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제도 시행 전 이미 '금연'을 선택한 일부 당구장에선 인식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서울 목동에서 금연 당구장을 운영 중인 D씨는 "가끔 중학생 자녀를 데리고 와 당구장에서 놀게 하는 부모도 있다"며 "당구장에 가면 부모님과 선생님 손에 끌려 나오던 우리 때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라고 웃었다.

E씨가 운영하는 등촌동 금연 당구장엔 가족이나 연인 단위 고객이 많다. E씨는 "가족이 삼삼오오 몰려오는 건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라며 "이들은 금연 당구장을 일부러 찾아 오는 손님들"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