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집·조윤선 집무실 포함…직권남용·문화계 '블랙리스트' 조준
문형표 이사장·김진수 靑비서관 집 포함…'삼성합병 찬성' 수사 속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6일 오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집무실과 자택 등 10여곳을 동시다발 압수수색했다.

현 정부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김 전 실장을 겨냥한 본격 수사가 시작됐다.

특검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 전 실장 자택에 수사진을 보내 비서실장 시절 업무 관련 기록과 각종 서류 등을 확보했다.

특검팀은 정부세종청사의 문체부 사무실과 관계자들의 자택 여러 곳도 압수수색했다.

대상지에는 조윤선 현 문체부 장관의 집무실과 자택, 문체부 기획조정실과 예술정책국, 콘텐츠정책국 등 '문화융성' 정책의 주요 부서도 대거 포함됐다.

특검팀은 '문체부 인사 전횡' 등 김 전 실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하고자 압수수색에 나섰다.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브리핑에서 "김기춘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한 증거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께 당시 김희범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실·국장 6명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 단계에서 입건됐다.

이미 출국 금지된 상태다.

이 의혹은 10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의 폭로로 세간에 알려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김기춘 전 실장이 김 전 차관에게 명단을 주면서 실·국장들을 자르라고 했다"고 밝혔다.

6명이 일괄사표를 제출했고, 이 중 3명은 공직을 떠났다.

이 사건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사실상 소유하며 마음대로 주무른 것으로 드러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의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을 지닌다는 해석을 낳았다.

재단 설립에 앞서 업무를 관장하는 문체부를 길들이려는 조치였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김종(55·구속기소) 전 문체부 2차관이 김 전 실장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문체부 전 고위 간부가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도록 힘써달라고 김 전 실장에게 부탁했다는 내용이다.

특검팀은 최근 유 전 장관을 제3의 장소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해 이런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부터 작년 2월까지 청와대 2인자이자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더불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묵인 내지 방조했다는 의심도 산다.

본격 수사에 나선 특검은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 혐의 외에 직무유기 의혹도 파헤칠 전망이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문화예술계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문화예술단체로부터 고발된 상태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블랙리스트 관리 의혹이 불거진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 예술정책국도 포함돼 특검이 관련 수사도 본격화했다.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 등 12개 문화예술단체는 김 전 실장이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를 풍자한 홍성담 작가의 작품 '세월오월'의 광주비엔날레 전시를 막았다고 주장하며 이달 12일 특검팀에 고발했다.

이들은 김 전 실장이 이듬해 1월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영화계 좌파성향 인적 네트워크 파악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고 이들의 정부 지원 사업 참여를 막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주장했다.

특검팀은 이날 전남 나주시에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시켰다.

문체부 산하 기관인 이곳은 각종 분야의 문화예술 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곳이다.

특검팀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문화예술위 예산 지출 내역을 확보해 분석함으로써 실제로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문화예술인들이 정부의 각종 지원 사업에서 배제됐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문체부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고 나서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일부 포착됐다.

검찰이 미르·K스포츠재단의 강제 모금 의혹과 관련해 10월 말 문체부 체육정책국 등 다른 부서 압수수색에 나서자 '블랙리스트 의혹' 핵심 부서인 문체부 예술정책국의 컴퓨터 수대의 하드디스크가 새 것으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조 전 장관이 부임 직후 서울 집무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교체된 것으로 전해져 증거 인멸 의혹도 나온다.

이에 대해 문체부 측은 "장관실 하드디스크 교체는 새 장관 부임에 따른 것"이라며 "교체된 하드디스크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보관돼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으므로 증거인멸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특검은 조만간 문체부 관계자들과 김 전 실장을 소환해 의혹과 관련한 사실관계와 경위 등을 파악할 방침이다.

또 특검팀은 작년 7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의혹'과 관련해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김진수 비서관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숙원 사업이던 이 합병에 국민연금이 삼성 측에 유리하도록 찬성표를 던진 것을 둘러싸고 '외압'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복지부 장관이던 문 이사장이 '청와대 뜻'을 거론하며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규철 특검보는 압수수색과 관련해 "문 이사장은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지시 여부 규명에 따라 박 대통령이 최씨를 통해 삼성의 '합병 민원'을 전달받고 이를 들어주는 대가로 최씨 측을 지원하도록 했다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가 이어질 수 있다.

특검팀은 합병 찬성 결정을 주도한 홍완선(60) 전 국민연금 기금운영본부장도 업무상 배임 피의자로 소환 조사했다.

(서울·세종연합뉴스) 이웅 최송아 김수현 최평천 기자 song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