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국정 슬로건으로 내세운 ‘창조경제’의 핵심 사업인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에 휘말려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여론광장] 창조경제혁신센터 유지해야 하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정부와 대기업,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운영하는 창업보육기관이다. 전국 17개 시·도에 18개 센터가 들어섰다. 각 센터는 삼성, LG, SK 등 대기업들이 한 곳씩 맡아 기술 및 마케팅 지원을 하고 있다. 유망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발굴해 집중 육성하고, 예비 창업자에게 창업 관련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신’ 격인 창조경제타운 홈페이지 구축 시안을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미리 받아본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기업을 강제 동원한 반(反)시장주의 정책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다. 시장 자율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는 창업지원 정책은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초래할 수밖에 없어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을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와 창조경제는 무관하며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공생(共生)을 이끄는 성공적인 국가 창업허브로 자리매김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존속에 대한 김선일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 회장의 찬성 논리와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의 반대 논리를 소개한다.

■ 찬성 - 선순환 경제생태계 조성에 성공…혁신센터 위상 이미 세계가 인정

어렵게 뿌리내린 성과 되돌릴 이유 없어


김선일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 회장. △ 성균관대 전자공학과 △ 삼성전자 전사기획담당 이사 △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 행정자치부 조직혁신자문위원
김선일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협의회 회장. △ 성균관대 전자공학과 △ 삼성전자 전사기획담당 이사 △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장 △ 행정자치부 조직혁신자문위원
전국 18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4차 산업혁명의 첨병 역할을 담당하며 국가 전체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이를 기업가정신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선순환의 경제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세계에서 잠재력을 인정받는 알짜 신생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창업보육센터, 테크노파크 등 지역 유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아이디어 단계부터 기업의 성장 단계까지 전 주기에 걸쳐 지원하는 창업 생태계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씨랩, 드림벤처스타 등 각 센터의 공모전을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멘토링·컨설팅, 법률·특허 등 상담 서비스를 통해 창업을 원스톱으로 돕고 있다.

지난 1년여간의 구체적인 성과만 보더라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존속 이유는 충분하다. 18개 센터에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스타트업 1528개를 보육 지원했다. 보육기업 신규 채용 인원만 2002명에 달한다. 초기 창업자를 위해 창업 멘토링 2만1415건, 시제품 제작 1만3529건을 지원했다. 8079억원의 투자펀드를 조성해 이 중 2649억원을 집행했다.

[여론광장] 창조경제혁신센터 유지해야 하나
더 큰 성과는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스타트업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2016 보스턴 매스챌린지’에서 최고상인 다이아몬드상을 경기 창조경제혁신센터 보육기업인 EYL이 수상했다. 지난달 핀란드에서 열린 유럽 최대 창업콘퍼런스 ‘슬러시’에서도 1700여개 기업 중 TOP4 기업에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보육기업인 스케치온과 샌드버드 등 2개 한국 기업이 선정됐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스타트업,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위상을 이제 세계가 알아주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선진국은 이미 신규 고용 창출은 창업과 미래 사업에서만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스타트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펴 국가경제 경쟁력의 근본인 고용창출과 신성장동력 확보 등 두 가지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정책은 창업보육, 지역특화사업 지원, 고용창출, 창업지원 각 부처별로 분산돼 있던 정책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최초이자 유일한 시도다. 어렵게 뿌리내린 이 시도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창업보육 시설인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굳이 전국 17개 시·도에 분산 설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17개 시·도에 분산 설치된 18개 창업 전진기지가 지역 간 균형발전 기회를 부여하고, 지역특화사업 기반의 기술 교류 장(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는 의견은 얼마든지 수용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내용과 정책 방향이 글로벌 트렌드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면모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보다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인지도가 상당 수준 올라간 사업을 일부러 변경하고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속되기 위해선 중앙정부 및 전담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정책 수혜자인 지자체 스스로 센터 운영을 업그레이드하고 미래 성장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각 지자체는 물론 지역 기업, 지역 대학·연구소가 지역 고용과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자발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

■ 반대 - 관료적 습성에 기반한 전시행정…정부 의존적인 스타트업만 양성

창업강국 되려면 지원정책 脫정치화해야반대 포인트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과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 KAIST 경영대학장 △ 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 △ 서울대 산업공학과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장 △ KAIST 경영대학장 △ 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기술 변혁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어내면서 전 세계에서 제2의 창업 열풍이 일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애정을 갖고 추진한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단연 ‘창조경제’를 꼽을 수 있다. 창조경제 사업은 기본적으로 창업지원 정책이다. 하지만 창업지원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금 최순실 게이트의 유탄을 맞아 휘청대고 있다.

창업을 활성화해 국가적으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것은 어느 정권이든 포기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 정책, 특히 창조경제혁신센터 제도는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 우선 창조경제혁신센터 사업은 지나치게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시장 자율기능이 아니라 관(官) 중심의 운영은 많은 부작용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주도하면 실적을 집행하는 데만 몰두하고 회수 가능성에는 무책임해지기 쉽다.

[여론광장] 창조경제혁신센터 유지해야 하나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벤처 창업은 집중된 벤처 생태계 안에서 활성화된다. 초기 창업에는 자금, 컨설팅, 고급 인력 등을 연결해주는 많은 기능이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의 성공과 실패의 판단이 시장에 의해 신속하게 선별돼야 한다는 점이다. 고급 인력 공급의 ‘남방 한계선’이 경기 판교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대기업의 자원을 준조세식으로 동원해 전국에 골고루 나눠준 것만 보더라도 창조경제혁신센터 정책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는 물가가 살인적으로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사업을 조기에 성공시키지 못한 스타트업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사업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장 선별 기능이 작동해야 진정한 혁신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고 불필요한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가운데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나칠 정도의 지원 중심 정책이라는 얘기다. 관료적 습성에 기반한 정치적, 전시행정 정책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정부 의존적인 스타트업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에 익숙해지면 돈을 벌어 스스로 성장하는 기업이 되기 힘들다.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정부와 대기업의 직접지원 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의 창업 실패는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규제로 인해 사업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우버로 대표되는 차량공유 서비스나 구글 지도데이터 논란에서 보듯 다른 나라에서 수용되는 많은 혁신은 한국에서 철저히 봉쇄되고 있다.

시장이 없는데 아무리 지원해 봐야 그것은 자원 낭비일 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창업 지원 사업을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도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하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의 입법 사례에서 보듯 미래부는 규제 개혁보다 규제를 만드는 일에 더 전문성을 보여온 부처이고, 중소기업청 등 과거부터 벤처 육성을 담당한 부처에 비해 전문성도 떨어진다. 부처 이름에 ‘미래창조’를 붙인다고 기관의 전문성이 갑자기 생기고 규제 습성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창업 진흥은 정권의 부침에 상관없이 더 활성화돼야 하고, 계승돼야 한다. 스타트업 강국이 되기 위해선 국가의 창업지원 정책이 탈(脫)정치화해야 하고, 시장 자율 중심으로 조속히 재편돼야 한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