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뻥 뚫린 기내 보안…'만취객 한명'에도 속수무책인 한국
‘대한항공 기내 난동 사건’을 계기로 국내 항공기의 보안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만취객 한 명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수준을 여실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테이저건(전기충격기) 사용법을 숙지하고 있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세계적으로 기내 테러에 만전을 기하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일 벌어진 ‘기내 만취남 난동 사건’ 조사 결과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다고 23일 밝혔다. 한 중소기업 대표 아들인 임모씨(34)는 당시 베트남 하노이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KE480편에서 승무원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괴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승무원들이 진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미국 팝가수 리처드 막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승무원들이 기내 난동 행위 대응 매뉴얼을 잘 지켰다”며 “다만 진압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50분가량 소요돼 승객들이 불안에 떨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항공운송사업자는 승객 안전을 위해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내 보안요원 운영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기장과 승무원이 기내에서 사법 경찰관과 같은 보안요원을 맡고, 항공사는 1년에 3시간 이상 비무장 공격·방어 기술, 경찰 인계 절차와 구금 기법 등 보안교육을 하게 돼 있다.

보안교육 시간이 1년에 3시간에 불과한 데다 상당수 보안 요원은 여성 승무원이 겸직한다. 기내 만취남 난동 사건에서도 이런 현실은 여실히 드러났다. 여성 승무원들은 임씨 포승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테이저건을 겨눴지만 장전도 되지 않았다. 들고 있는 자세로 봤을 때 조작법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경찰의 증언이다.

한국에선 기내 보안요원이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조성구 경운대 경호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은 단순 난동이지만 한국도 테러와 공중납치 안전지대가 아니다”며 “경찰 투입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안요원의 전문성을 키우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선 2001년 9·11테러 이후 항공기 내 전문 보안요원을 늘리고 있다. 미국은 터키, 이스라엘 등 테러 위험 노선에 한해 사복 경찰관을 두는 ‘에어마셜’ 제도를 운용한다. 호주와 캐나다, 일본, 중국도 일부 노선에 승객으로 위장한 사복 경찰관을 탑승시키고 있다.

기내 난동에 대한 처벌 수위도 논란이다. 올 1월부터 기내 소란·난동 등의 행위는 1000만원 이하 벌금, 기장·승무원에 대한 업무 방해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리도록 강화됐지만 외국에 비해선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 수준이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 임씨는 올 9월에도 인천발 하노이행 기내에서 소란을 피우고 기물을 파손한 전력이 있다. 석 달 만에 같은 항공사 기내에서 다시 난동을 부렸지만 경찰은 21일 한국에 도착한 임씨를 보호자와 함께 돌려보냈다. 인천국제공항경찰대는 피의자 신분으로 불구속 입건돼 귀가한 임씨를 26일 오전 10시께 소환해 조사하기로 했다.

방장규 교통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초범이라도 사안에 따라 징역형을 주는 외국과는 달리 국내에선 대체로 200만원 미만의 벌금형에 머물고 있다”며 “지상과 달리 운항 중인 기내는 폐쇄되고 통제가 제한돼 자칫 승객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용/조아란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