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으로 '계란 품귀 현상'이 나타나면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계란값이 올라 흔하게 내놓던 계란 반찬을 빼는 모습이 눈에 띄고 품질이 떨어지는 대체 재료를 쓸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21일 오후 12시께, 서울 여의도의 한 돈가스 전문 음식점에는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실 규모(실평수) 82.6㎡(25평) 정도 되는 이 음식점의 주인 조 모(52) 씨는 이날 '다행히' 영업을 할 수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음식 제조용 계란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이날 오전 인근 다른 음식점으로부터 계란 8판(240개)을 가까스로 빌렸기 때문이다.

조 씨는 "거래하던 계란 도매상이 AI 여파로 문을 닫아 다른 도매상 5곳을 직접 찾았으나 계란이 없거나 주거래처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했다"며 "고기에 계란 등을 입혀 돈가스를 만드는데 오늘 영업 자체가 힘들 뻔했다"고 말했다.

조 씨는 빌린 계란 8판으로는 이틀 정도만 영업이 가능하다며 계란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대체 재료인 베터믹스(batter mix·튀김가루)를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거래 도매상이 내년 여름까지는 문을 열기 힘들다고 했다"며 "베터믹스는 계란보다 품질이 떨어지는데 AI 확산으로 우리 자영업자뿐 아니라 손님들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북엇국을 파는 음식점 주인 박 모(57)씨도 계란이 '금덩어리'가 됐다며 기본 반찬이던 계란프라이를 손님들에게 최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박 씨 또한 거래 도매상이 AI 여파로 계란을 공급하지 못해 최근 도매가 보다 가격 부담이 높은 슈퍼마켓에서 계란을 사들였다.

기존 계란 한판(30개) 도매가는 4천500원 정도 됐으나 슈퍼마켓 소매가는 6천3백 원 정도로 가격이 2천 원가량 비쌌다는 게 박 씨의 얘기다.

박 씨는 "계란 한판 값이 7천 원 이상 껑충 뛴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기본 반찬 외에도 계란이 들어가는 북엇국 만드는 것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간 일산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지난달 여의도에 음식점을 새로 차렸는데 AI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나 이달 매출이 전달보다 20% 정도 손실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업종의 자영업자도 사정은 비슷했다.

베이커리 전문 매장 점장 임 모(여·31)씨는 주력 제품이던 계란 샌드위치 대신 참치 샌드위치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 씨는 "계란값이 오르는 것도 오르는 것이지만, 구하기 어려운 '품귀 현상'이 더 두렵다"며 "영업 자체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떡볶이를 파는 이 모(여·53)씨는 떡볶이에 넣어 같이 파는 삶은 계란값을 최근 올렸다.

이 씨는 "계란 1개당 300원 정도에 팔았는데 600원으로 올렸고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개당 천 원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며 "계란 한 개에 천 원 하면 나부터가 사지 않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자영 업자들은 AI 파동으로 음식업의 피해가 심각한 데도 정부의 제대로 된 대책을 찾기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려 AI가 터진 바람에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반응도 제기됐다.

한식집을 운영하는 백 모(67)씨는 "정부가 계란 수입 방침을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우리 업자들의 피해를 어떻게 구제하겠다는 건지는 알 수 없다"며 "음식점만 30년가량 했으나 이렇게 위기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라고 호소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승환 기자 iam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