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누가 봐도 '사소한 사건'인데…괴로운 경찰
“PC방 흡연실에 두고 온 담배가 잠깐 사이 사라졌어요.”(22세 남성)

얼마 전 서울 대현동 신촌지구대에 이 같은 분실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가 직접 지구대를 찾아왔다. 소속 경찰들은 순찰차를 타고 PC방에 출동했다. 현장에서 피우다 만 담배 한 갑을 가져간 ‘범인’은 잡지 못했다. 신고자가 강경하게 사건 처리를 원해 서대문경찰서 형사과로 넘겼다. 지구대 소속 경찰은 “담배 한 갑도 엄연한 국민 재산이지만 이런 사건을 처리하는 데 경찰 행정력을 투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장 경찰관을 가장 괴롭히는 건 ‘누가 봐도 사소한 사건’이다. 아무리 별일이 아니어도 일단 접수해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한 지구대 소속 경감은 “연말 계속되는 촛불집회에 차출되고 바쁜 시기에 황당한 민원 신고가 잇따르면 힘이 너무 빠진다”고 말했다.

“민원 해결해주세요” 신고 대부분

[경찰팀 리포트] 누가 봐도 '사소한 사건'인데…괴로운 경찰
‘민중의 지팡이’ 경찰을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생각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일선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가장 많은 유형은 ‘해결사’ 민원이다.

자취생이 많은 대학가에서는 쥐나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신고가 많다. 서울 창전동 서강지구대 경찰관은 “인근 여대생이 사는 집에서 ‘찍찍’ 소리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일이 있는데 정작 쥐는 없었다”며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신고도 간간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가장 많은 민원 신고는 이웃집 소음이나 흡연, 주차 문제다. 삼성1파출소에서는 옆집 원룸에서 개가 짖는다는 신고가 들어와 출동해야 했다. 소속 경찰은 “집에 개 주인이 없어 연락도 안 되고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파출소 관계자는 “반려동물 소음 신고가 많아졌지만 막상 출동해도 개를 조용히 시킬 수도 없고 아무 권한이 없다”며 “층간 소음도 마찬가지로 경찰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광희지구대에서는 “집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온다”는 민원 전화를 받았다. 지구대 경찰관이 “수리업체에 전화해보라”고 하자 민원인은 “녹음기를 켜놓고 다 듣고 있다”며 “빨리 오지 않으면 상급부서에 신고하겠다”고 윽박질렀다. 결국 경찰관은 출동했고 민원인의 하소연을 한참 들어준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순찰차로 집에 데려다달라”는 만취자

[경찰팀 리포트] 누가 봐도 '사소한 사건'인데…괴로운 경찰
연말이면 실종 신고도 잇따른다. 주로 “같이 술을 마시다가 없어졌다”는 신고다. 자양파출소는 얼마 전 “포장마차에서 같이 술을 먹던 여자친구가 갑자기 없어졌다”는 20대 남성의 신고를 받고 두 시간 동안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수색에 나섰던 경찰관은 “여자친구가 집에서 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실종 신고는 한번 출동하면 시간을 꽤 많이 잡아먹는다”고 토로했다.

주취자 민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신촌지구대에선 16일 새벽 만취한 여성이 토사물로 엉망이 된 채 들어와 지구대 여경들이 뒷수습에 나섰다. 신촌지구대 경찰관은 “요즘 지구대 여경들의 별칭이 ‘목욕의 신’이 됐다”고 귀띔했다. 서울 청량리파출소 관계자는 “연말엔 많이 취했으니 집까지 순찰차로 데려다 달라는 사람이 1주일에 두세 명 찾아온다”며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경찰이 말을 안 듣는다고 떼를 쓰는 일도 있다”고 했다.

“112센터가 신고 걸러줘야”

신고는 대부분 112를 통해 지구대로 들어온다. 상당수 민원 신고상담은 110으로 전화해야 하지만 이를 아는 시민은 많지 않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112 신고의 절반은 민원 상담이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전화다. 조재광 서울청 112종합상황실 관리팀장은 “일반 민원이 긴급신고전화인 112로 몰려 긴급 출동 역량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고 하면 협박하는 이도 적지 않다. 지구대 경찰관은 정당하게 민원을 거절해도 국민권익위원회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신고하는 민원인을 두려워한다. 권익위나 인권위는 민원인의 글을 토대로 해당 경찰관에게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한 답변서를 작성하도록 한다. 한 지구대 소속 경사는 “권익위나 인권위에서 온 답변서를 작성하는 것도 일이고, 괜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현장에선 112신고센터가 신고를 가려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지구대나 파출소에서는 112에서 신고가 넘어오면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관행적으로 출동할 수밖에 없다. 한 지구대 소속 경위는 “112상황실에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무조건 지구대로 출동을 접수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정한 기준을 둬서 지나치게 사소한 사건은 112센터에서 걸러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 출동 낭비를 줄이기 위해 상황이 곧 종료되는 사건은 반드시 ‘신고 취소’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박상용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