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삼성과 늘 비교돼 스트레스…'최순실 무풍지대'엔 자부심
LG그룹 직원들은 종종 억울하다. 힘들 게 일하는 데도 “경쟁사보다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는다.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데도 “왜 이렇게 마케팅을 안 하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대학생 설문조사에선 ‘대기업 다니는 젊은 여성’으로 그룹 이미지가 비친다지만 실제론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가 중심인 기업이다. LG의 김과장 이대리가 체감하는 LG는 어떤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내 판촉 때문에 혼인신고 했어요”

LG 직원들은 각종 전자제품을 싸게 살 기회가 많다. LG전자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사원 대상 판촉행사를 벌이는 일이 잦아서다. LG상사에서 일하는 정모 과장은 이 판촉 행사 때문에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굳이 주민센터까지 가기 귀찮고 딱히 필요성을 못 느껴 미뤘던 혼인신고다. 정 과장은 “올해 봄, 직원과 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G5를 시중 대리점보다 20만원 싸게 할인판매하는 판촉행사가 있었다”며 “아내가 할인 혜택을 받으려면 혼인관계를 증명해야 해 결혼 3년 만에 혼인신고를 하게 됐다”고 웃었다.

LG 직원들은 연말연시에 자유롭게 장기휴가를 떠난다. 직원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연차를 적극적으로 쓰자는 게 회사 지침이어서다. 보통 매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다음해 1월1일까지 1주일 이상은 권장 휴가 기간으로 지정한다. 주말과 잘 맞추면 거의 열흘을 쉴 수 있다. 이렇다 보니 6개월 전부터 연말 휴가에 맞춰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예약해두는 직원도 많다.

LG디스플레이에 다니는 이모 과장은 “과거에는 며칠씩 휴가를 쓰려면 눈치를 봐야 했지만 요즘은 회사에서 휴가를 권장하기 때문에 편하게 다녀온다”며 “연말 장기휴가는 LG맨의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LG상사 직원 김모씨도 “연말 장기휴가가 있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기에 좋다”고 말했다.

부담스러운 경쟁자의 존재

그룹의 맏형이 LG전자인 만큼 삼성전자를 주력으로 하는 삼성과의 비교는 LG인들에게 숙명이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넘어 각종 내부 성과지표도 “삼성과 비교해 어느 정도 했는가”를 따질 때가 많다. 그만큼 기업 역량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김과장 이대리 입장에선 속상할 때도 많다.

LG 전자계열사에서 일하는 박모 과장은 최근 “미국 사업을 삼성만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삼성에서는 수천명이 수조원의 자금을 굴리며 벌이는 사업이었다. 박 과장은 “서울에 앉아 머리만 굴려서는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경쟁도 좋지만 우리 역량에 맞는 전략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열사 분위기도 삼성과의 경쟁에 얼마나 노출돼 있느냐에 따라 갈린다. 삼성과 부대낄 일이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조직 문화가 수직적이라는 설명이다. (주)LG의 한 직원은 “계열사 사람들을 만나면 일견 투박해 보이는 LG화학보다 LG전자 직원들이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일사불란한 삼성전자와 경쟁하며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아가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1등 회사도 많은데…2등 이미지 ㅠㅠ

LG는 예전부터 삼성에 밀려 2등이란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주력사 중 하나인 LG화학은 국내 1위, 글로벌 선두권 화학사로 직원들 자부심이 강하다. LG화학의 한 직원은 “삼성과 경쟁할 때도 화학은 LG가 단연 1위였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LG화학은 전통적으로 ‘화학업계 사관학교’로 불릴 만큼 화학업계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며 “최근엔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글로벌 1위 경쟁력을 갖추며 직원들의 프라이드가 대단하다”고 전했다.

LG디스플레이도 디스플레이업계 1위 회사다. LCD(액정표시장치) 시장에서 점유율 등 양적 측면뿐 아니라 질적 지표인 수율에서 업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구본준 (주)LG 부회장이 토양을 일궜다. 1998년 반도체 빅딜 때 3위여서 당시 현대반도체에 LG반도체를 빼앗긴 구 부회장은 이후 LG필립스디스플레이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LG에 보기 드문 독한 정신을 불어넣었다. LG디스플레이 이모 차장은 “신입사원 시절 전화를 받을 때마다 ‘1등이 되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다만 모기업인 LG전자가 업계 2등이다 보니 LG디스플레이도 2등처럼 인식하는 일반인이 많아 좀 아쉽다”고 덧붙였다.

“마케팅 잘해라” 네티즌 지적에 설움

LG그룹은 전반적으로 기술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는 엔지니어들에 대한 중시로 이어진다. 그만큼 회계 재무 홍보 등 소위 지원조직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최근 중견기업 관리팀장으로 이직한 이모 전 LG디스플레이 차장이 단적인 예다. 이 전 차장은 “앞뒤 1~2년 사이에 팀원 대부분이 몰려 있어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장 승진이 힘들어 보였다”고 털어놨다.

잊을 만하면 네티즌 사이에서 나오는 “잘하는 거 좀 더 홍보하라”는 격려도 LG전자 직원들 입장에선 부담이다. 알려진 것 이상으로 제품 품질이 좋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들의 장점을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회사라는 느낌도 묻어 있어서다. 김모 과장은 “마케팅을 일부러 안 하는 거 아니냐고 네티즌들이 지적한 부분은 실제로는 모두 홍보했지만 광고비가 적어 묻힌 포인트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룹 오너와 관련한 구설수가 거의 없다는 점은 LG 직원들의 자랑이다.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서도 정치권 등에서 받는 혐의가 거의 없다. 다른 대기업들과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미르재단 등에 돈을 냈을 뿐 반대급부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오너 일가가 사고를 친 적이 없고, 그룹 내 비리도 워낙 적다 보니 법원이나 검찰의 동향을 파악하는 대관 담당 직원도 따로 없다. 검찰청이 있는 서울 서초동에서 각 그룹 오너를 보좌하는 직원들끼리 저녁 식사를 하면 LG 직원만 주변 지리에 어두워 헤맨다.

노경목/남윤선/정지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