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방역당국이 AI를 이유로 도살 처분한 닭과 오리의 마릿수도 1000만마리에 육박했다.

'AI 확산' 역대 최고 속도
1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이후 의심 신고된 50건 가운데 43건이 고병원성(H5N6형) AI로 확진됐다. 검사가 진행 중인 나머지 7건 역시 고병원성으로 확진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방역당국은 보고 있다.

방역당국이 지금까지 도살 처분한 가금류는 전국 8개 광역시·도에서 총 810만1000마리로 불어났다. 도살 처분이 예정된 가금류(155만5000마리)까지 합하면 방역당국이 도살 처분을 확정한 닭과 오리는 965만6000마리에 달한다. 산란용 닭을 키우는 농가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전체 마릿수의 30% 이상이 도살 처분돼 계란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도살 처분 마릿수는 AI 피해가 가장 컸던 2014년 수준(1400만마리)엔 아직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확산 속도는 그때에 비해 훨씬 빠르다. 2014년엔 1400만마리 도살 처분에 100여일이 걸렸다. 이에 비해 올해는 지난달 16일 최초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25일 만에 도살 처분 마릿수가 1000만마리에 육박했다.

닭과 오리 수요가 많은 수도권 지역 농가에서 AI 확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지난 주말 AI가 확진된 곳은 경기 여주(산란계 2건), 안성(육용오리), 포천(산란계 2건), 전남 나주(종오리) 등이다. 나주를 제외하면 모두 서울 인근 지역이다.

방역당국은 AI 위기 경보 단계를 당분간 가장 높은 ‘심각’으로 올릴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도권에서 확진 판정이 나온 지난달 25일 이미 경보단계를 선제적으로 ‘주의’에서 ‘경계’로 높였고, 이후엔 사실상 ‘심각’ 단계 수준의 방역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상도 농가에서 확진 판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 경보 단계만 ‘심각’ 수준으로 높이면 국민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0일 고병원성 방역대책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농가에 대한 제재 강화와 영남권으로의 바이러스 유입 차단 등의 내용을 담은 ‘AI 방역시스템 보완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만간 전국 가금류에 대한 일시 이동중지명령도 추가 발동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