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사우디 아우디', '당취평 소취하'…고전적 건배사도 여전히 인기

바야흐로 송년회 시즌이다.

기관·단체나 친목회의 송년 모임이 앞다퉈 이뤄지고 있다.

국정농단 사태에 전국이 들끓은 2016년 송년회는 거창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조촐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각오도 다진다.

송년회의 '감초' 격인 건배사는 그래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술 대신 음료로 건배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이맘때면 재미있고 기발한 건배 구호가 회식 자리를 달궜다.

'당신 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살고 가끔은 져주자),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소녀시대'(소중한 여러분 시방 잔 대봅시다),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 '사이다'(사랑을 이 술잔에 담아 다함께 원샷) 등 구호가 애용됐다.

너무 과한 술자리가 아니라면 인상적인 건배사는 모임의 흥을 돋우기 마련이다.

어르신들 모임에서는 '9988! 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만 아프고 행복하게 떠나자) 구호가 빠지지 않는다.

"무조건 도와주고, 한없이 도와주고, 도와 달라고 말하기 전에 도와주고, 전화하기 전에 도와주자"는 '무한도전'은 뜸을 들였다가는 누군가에게 선수를 당할 수 있는 인기 건배사다.

중국말인양 성조를 넣어 읊는 '당취평~ 소취하~'(당신에게 취하면 평생 즐겁고, 소주에 취하면 하루가 즐겁다), 부부동반 모임의 '사우디 아우디'(사나이 우정은 '디질'때까지, 아줌마 우정도 '디질'때까지), 고향 모임에서 나오는 '우리가 남이유? 아니유~' 등은 계속 들어도 빙그레 웃음짓게 한다.

올해 송년 모임에서는 뒤숭숭한 세태를 반영하 듯 전에 없던 건배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국정 농단 사태의 주인공인 최순실을 모티브로 한 '최순실 시리즈'가 주를 이룬다.

'최대한 순순히 실려 갈 때까지 마시자', '최후 통첩입니다.

순순히 물러나시죠. 실수는 그만 하세요', ' 최고인 사람은 순수하게 국민을 섬기는 사람이유~ 실패한 일들을 숨기면 천벌 받아유~' 등 건배사가 좌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위하야'도 최근 부쩍 늘어난 건배사다.

'위하야'는 "왜 여당이 좋아할 '~위하여'만 하느냐"며 야권 지지자들이 우스개로 외치던 건배사이기도 했다.

'퇴근해'라는 구호도 적지 않게 들린다.

건배사를 할 때마다 '꽃의 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고 소개하며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를 외쳤던 직장인 이모(50)씨는 최근 '덕향만리(德香萬里)'를 추가했다.

이씨는 "요즘 썩은 냄새가 전국을 뒤덮고 있어 덕의 향기로 만리를 채울 사람을 기다린다는 바람에서 '덕향만리'를 건배사로 밀고 있다"고 말했다.

건배 제의 자리가 많은 기관·단체장들은 각자 만든 건배사를 선보이고 있다.

윤여표 충북대 총장은 회식 자리만 가면 '나기대기'(나라의 기쁨은 대학의 기쁨)를 거론한다.

우수 인재를 유치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인물로 만들겠다는 건배사다.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우보만리(牛步萬里)'를 올해 송년 건배사로 정했다.

그는 "국가적으로 어지럽고 힘든 한 해였지만 더 높은 민주주의, 더 좋은 나라에 대한 희망을 만드는 한 해이기도 했다"며 "'함께 행복한 교육'을 향해 뚜벅뚜벅 힘차게 나가자. 황소걸음이 만리를 간다"고 설명했다.

이승훈 청주시장의 건배사는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의미의 '동주공제(同舟共濟)'다.

손자의 '구지편'(九地篇)'에서 유래된 말인데 주민 자율 통합을 이룬 청주·청원이 지역발전을 위해 힘을 합하자는 취지로 이 건배사를 쓴다.

청주지검 충주지청 이태형 지청장은 항상 즐겁게 웃고 지내자며 '스마일'을 건배사로 즐겨 쓴다.

'스치기만 해도 웃자, 마주치기만 하면 웃자, 일부러라도 웃자'라는 뜻이 담겼다.

이근규 제천시장은 모임에 참석한 인사의 이름을 활용해 "지금 부르는 이 이름이 우리 가슴 속에 오래도록 새겨지기를 바라면서 멋진 000를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한다.

개개인의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잘 간수하고 모든 이들이 소중히 여기도록 '이름 값'을 하자는 의미다.

(박재천 변우열 심규석 공병설 김형우 기자)


(충북=연합뉴스)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