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지배하는 새로운 코드 '전염'
자유롭게 말과 행동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멈춰 선다. 마네킹이 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카메라만 360도 뱅글뱅글 돌며 이들을 비출 뿐이다. 유튜브를 통해 최근 국내외에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마네킹 챌린지’ 영상이다. 이런 영상은 수만개에 달한다.
문화를 지배하는 새로운 코드 '전염'
시작은 지난 10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학생과 친구들이 마네킹 포즈를 함께 취한 동영상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이 동작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미셸 오바마부터 힐러리 클린턴, 폴 매카트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많은 유명 인사들이 참여했다. 국내에선 정치적·사회적 의미가 더해져 빠르게 퍼져나갔다. ‘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던 대학생들이 멈춰서는 모습, 최순실과 정유라의 모습을 흉내 낸 이들이 마네킹처럼 굳어버린 모습 등이다. 단순한 장난 같지만 사회적 가치와 스토리가 어우러져 연쇄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전염’이 문화를 지배하는 새로운 코드로 부각되고 있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문화적 행위도, 흥행이 어려울 것 같은 문화 콘텐츠도 한 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확산된다.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를 더욱 확대·재생산한다. 사람들은 여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또 다른 트렌드도 만들어낸다. 소비자가 사용자가 되고, 사용자가 소비자가 되는 구조 속에서 스스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마네킹 챌린지뿐만이 아니다. 2014년 루게릭병 환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시작된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있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행동의 전염성은 강력했다. 재미도 있지만 기부를 하고 루게릭 환자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본다는 의미가 더해지면서 파급 효과는 더욱 커졌다.

문화콘텐츠분야에서도 SNS를 통한 전염성은 흥행을 좌우하는 새로운 지표가 되고 있다. 화려한 배경과 캐스팅, 빈틈없이 짜인 각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SNS에서 외면당하면 실패한다. 지난 9월 개봉한 영화 ‘아수라’가 대표적이다. 이 영화는 1000만 관객을 예상할 만큼 개봉 전 기대가 컸다. 그러나 SNS에서의 혹평과 외면으로 259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럭키’는 아수라의 배가 넘는 697만명을 끌어모았다. 럭키는 전혀 흥행을 예상하지 못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SNS에서의 ‘버즈량(특정 대상이 언급되는 횟수)’이 당시 개봉작에 비해 10배나 높게 나타나며 입소문만으로 흥행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전염의 매개체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사이더’로서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희소성을 가진 행위와 콘텐츠를 전파한다는 공유 주체로서의 우월감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전염 현상에 대한 공급자들의 착각도 존재한다. ‘바이럴 마케팅’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업들은 최근 네티즌의 입소문으로 브랜드와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소비자는 대량으로 일괄 공급되는 콘텐츠엔 더 이상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문화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염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이 같은 함정을 피하고 새로운 요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문화적 행위와 콘텐츠만이 ‘공유’와 ‘좋아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색다른 스토리도 가미돼야 한다.

《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의 저자 조나 버거는 입소문의 요건을 이렇게 설명한다. “신화 속 트로이 목마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좋아할 만한 소재와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어야 한다.” 전염의 대상이 돼 새로운 트렌드의 중심에 서고 싶은가. 작은 행동, 작은 소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만의 ‘트로이 목마’를 담고 있다면 말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