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가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던 시기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을 도발해왔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노린 사건도 두 번이나 있었고 장소도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신군부 주도세력 전두환 집권…정치활동 규제 북한, KAL기 폭파·아웅산 폭탄테러로 혼란 조성
신군부의 정치탄압과 유화조치

1980년 5월31일, 신군부를 이끌었던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상임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섰습니다. 신군부는 유력 정치인을 체포하고 170여개의 정기 간행물을 폐간했습니다. 400여명의 언론인을 해고하고 정권에 비판적인 교수들을 대학에서 쫓아냈지요. 그해 9월 김대중은 내란 음모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고 자택에 갇혀 있던 김영삼은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8월 말, 통일주체국민회의는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처음 2년 동안은 강압적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대학에는 언제나 사복 입은 형사들이 지키고 있다가 시위가 일어나면 곧바로 주동자를 잡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사회와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전두환은 통치 방법을 부드럽게 바꿨습니다. 대학에서 쫓겨난 교수와 학생들이 돌아올 수 있었고 정치 활동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이후 사상과 이념의 자유가 허용된 대학가를 중심으로 좌익 이념이 활발하게 퍼지게 되었지요.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던 시기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을 도발해왔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노린 사건도 두 번이나 있었고 장소도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던 시기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을 도발해왔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노린 사건도 
두 번이나 있었고 장소도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던 시기에도 북한은 끊임없이 남한을 도발해왔습니다. 대통령을 직접 노린 사건도 두 번이나 있었고 장소도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잇따른 테러 책동

1974년 8월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는 대통령을 저격하려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기념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부부가 참석하고 있었지요. 기념식장에 들어온 조총련계 재일동포 문세광은 연단에서 기념사를 하던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쐈습니다. 조총련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줄인 말로, 일본에서 사는 친북 성향 동포들의 모임입니다. 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연단 아래로 몸을 숙여 무사했지만 무대 위 의자에 앉아 있던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는 총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돼 4개월 후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1976년 8월18일에는 북한군이 미군을 도끼로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미군은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지요. 이 사건이 터지자 주한 미군과 한국군은 바로 전투 태세에 들어갔습니다. 전쟁의 위기가 높아지자 북한도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8월21일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지요. 남북한의 문제로 김일성이 공식 사죄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1983년 10월19일에는 한국의 중요 관리들이 한꺼번에 희생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미얀마를 공식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은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인 아웅산의 묘지를 참배할 예정이었는데 교통 체증으로 30분 늦게 되었지요. 그런데 먼저 도착한 공식 수행원들이 서 있던 묘지 건물 지붕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사전 점검을 위해 애국가를 틀었는데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공작원들이 대통령이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폭탄을 터뜨린 것입니다. 그날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장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포함한 17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미얀마 당국은 현장에서 북한 공작원 한 명을 사살하고 두 명을 사로잡아 범행을 자백받았습니다. 이후 미얀마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끊었습니다.

1987년 11월29일에는 북한이 우리 민간 여객기를 폭파시킨 엄청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당시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 서울로 오던 대한항공 여객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는 미얀마의 앤다만 해역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북한의 ‘1988 서울올림픽’ 방해 책동

테러라고 여긴 수사당국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공항에 머물렀을 때 내린 승객 두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일본인 부녀로 가장한 이들은 로마공항에서 체포됐습니다. 조사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감추고 있던 극약을 삼켜 자살을 시도했지요. 남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지만 김현희라는 여자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고 파견된 특수 공작원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다음해 서울에서 개최 예정이던 88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북한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도발을 계속했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흔들리지 않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서울올림픽은 160개국이 참가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올림픽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 이후 대한민국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세계 열강의 지위에 오르는 바탕을 마련하게 됐습니다.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