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 사건 범인 뒤바뀌어…최근 재심서 잇따라 '무죄'
검찰·경찰 뒤늦은 '사과'…피해자 형사보상·국가배상 진행


십수 년 전 전북지역에 사는 소년 4명은 씻을 수 없는 악몽을 겪었다.

우연히 각자 다른 사건에 연루되면서 강도치사범과 살인범으로 몰린 것이다.

이들에게는 '살인의 기억'이 없었다.

경찰의 폭행과 억압, 거짓 진술 강요만이 뇌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지난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과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소년들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불우한 10대 용의자, 강압수사, 진범 추정인물 등장, 복역, 박준영 변호사의 조력, 재심서 무죄 등 두 사건은 닮은 점이 많다.

열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다.

이 대원칙이 무너지면서 이른바 '삼례 3인조'와 약촌오거리 소년의 삶도 함께 어그러졌다.

이들의 사연을 정리한다.

◇ '17년 만에 벗은 누명'…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30대 청년 세 명은 지난 10월 사건 17년 만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다.

최대열(38)씨 등 동네 선후배 3명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강도들은 주인 유모(당시 76) 할머니를 질식사시킨 뒤 현금과 패물 등을 훔쳐 달아났다는 것이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였다.

경찰에 붙잡힌 '삼례 3인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적장애인 데다가 배움이 짧은 19∼20세의 청소년이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이들은 각자 징역 4∼6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이 사건의 다른 용의자 3명이 부산지검에 검거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지만, 전주지검에 이첩된 뒤 자백을 번복해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이 지나 공소시효는 지났고 사건 기록도 모두 폐기됐다.

이들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해 3월 유가족이 보관 중인 현장검증 동영상과 진범 추정자들의 사건 기록을 근거로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흐릿한 기억이지만 현장검증 때 한 경찰은 '너희는 배우고 나는 감독이다'란 말까지 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와중에 또다시 사건 결과를 뒤엎을만한 반전이 생겼다.

당시 '부산 3인조'로 지목됐던 이모(48)씨가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하고 피해자의 묘소를 찾아가 참회한 것이다.

이씨는 "당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죄를 인정하고 자백했지만, 검찰은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그때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었을 것이며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마음속에 얹고 살다 보니 죄책감으로 스스로 위축됐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재판에서도 범행 당시 눈이 내렸던 상황과 범행 도구, 사건 현장 내부 구조, 범행 시 청테이프 사용, 유 할머니의 입에 물을 부은 상황, 할머니를 상대로 인공호흡을 했던 사실 등을 정확히 설명했다.

이씨는 재심 선고 전날에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유 할머니의 조카 며느리를 만나 "그날 일은 모두 잊고 사셨으면 좋겠다.

삼례 애들도 우리 때문에 고생했는데 잊고 살았으면 한다"고 사과했다.

'삼례 3인조'에게도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이씨와 함께 '부산 3인조'로 지목된 배모 씨는 지난해 4월 숨졌고 조모 씨는 사건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는 지난 10월 28일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최대열, 임명선, 강인구 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최씨 등의 자백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심을 맡은 장찬 부장판사는 "17년간 크나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들과 그 가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법원으로서는 설령 자백했더라도 정신지체로 자기 방어력이 부족한 약자들이라는 점을 살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자백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에 대해 면밀히 살피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고 유감스럽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재심 선고 직후 임명선 씨는 "제가 교도소에 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제 하늘나라에서 기뻐할 것"이라며 "앞으로 새 출발 하는 의미에서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다.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의 기구한 사연은 연극 '귀신보다 무서운'으로 제작돼 공연 중이다.

◇ 목격자에서 살인자로 몰린 소년…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2000년 8월 우연히 살인사건 현장을 목격한 최모(32)씨는 한순간 청춘을 송두리째 잃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최씨는 10대 초반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방에서 배달일을 했다.

최씨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다.

길가의 한 택시 운전석에서 기사 유모(당시 42)씨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예리한 흉기로 12차례나 찔린 유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새벽 숨을 거뒀다.

최초 목격자인 최씨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경찰은 최씨가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한 거짓 자백은 독이 됐다.

경찰 발표와는 달리 최씨가 사건 당시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살인범으로 전락한 최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0년 출소했다.

수감 생활 중에는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도 접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2년 8개월이 지난 2003년 3월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당시 19)씨는 경찰에 붙잡히자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의 친구 임모 씨로부터는 "사건 당일 친구가 범행에 대해 말했으며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지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김씨와 그의 친구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직접 증거가 없어 검찰은 기소조차 못 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달 17일 최씨에 대한 재심에서 "경찰·검찰 수사과정에서 한 최씨의 자백 동기와 경위를 수긍하기 어렵고 내용도 허위자백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16년 만에 굴레를 벗은 것이다.

최씨는 무죄 선고 직후 "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서 좋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당일 사건 당시 풀어줬던 김모(35)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해 구속기소 했다.

김씨는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시신 부검 결과와 범행 도구를 봤다는 진술 등 (김씨의 살인을 입증할) 관련자가 많아 혐의를 밝히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현재 이 사건을 소재로 영화 '재심'(가제)이 제작 중이다.

배우 정우와 강하늘이 주연을 맡았다.

이들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는 두 사건의 공통점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는 지적장애인이나 미성년자가 범인으로 몰려 누명을 썼고,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수사기관이 가혹한 수사를 했다는 점을 꼽았다.

두 사건의 수임료는 '0'원.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 변호를 자처했다.

박 변호사는 "진실은 세월에 묻히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형사사건 재심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과 경찰은 뒤늦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조만간 두 사건에 대한 형사보상과 국가배상 절차가 진행된다.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sollens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