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역을 무정차한다는 안내방송에 집회 참가자들은 서대문역에서 쏟아져 내렸다. 사진=이진욱 기자
광화문역을 무정차한다는 안내방송에 집회 참가자들은 서대문역에서 쏟아져 내렸다. 사진=이진욱 기자
[이진욱 기자] "광화문역에 승객들이 몰려 무정차 통과할 예정입니다."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저녁 광화문역을 한 정거장 남겨둔 서대문역에서는 이같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출입문은 한참동안 열려있었고 방송은 반복됐다. 어디선가 들려온 "내리자"는 말 한마디에 승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출입문으로 쏟아져 내렸다. 본 집회가 시작하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은 빨랐고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 주최 측 추산 서울 170만…청와대 100m 앞에서 사전집회

서울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에 뿔난 민심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서로 안면식도 없는 시민들은 한데 모여 근심을 공유했고, 각자 입에서 한 목소리로 '하야송'을 불렀다.

이날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시청역, 종각역, 서대문역 등을 통해 인파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170만명이 집결했다고 밝혔다.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 5차 집회 당시의 15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법적 절차에 따른 퇴진 의사를 밝혔지만, 이를 교묘한 정치적 계산으로 받아들인 시민들은 더 많이 집회에 참가했다. 박 대통령의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정한 새누리당도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민과 집회에 참가한 시민 간에 가벼운 언쟁과 몸싸움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만류로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진=이진욱 기자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민과 집회에 참가한 시민 간에 가벼운 언쟁과 몸싸움이 있었지만, 시민들의 만류로 폭력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진=이진욱 기자
이날은 오후 6시 본 집회에 앞서 청와대 100m 앞 지점에서 사전 집회가 열렸다. 법원은 이날 주최 측이 경찰의 금지·제한 통고에 맞서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허용했다. 이에 청와대에서 100m 떨어진 126멘션·효자치안센터 및 자하문로 16길21 앞 인도에서의 집회가 오후 1시부터 이어졌다.

시민들은 오후 4시부터 청와대로 행진했으며 선두에는 세월호 유가족이 섰다. 시민들은 불과 100m 앞에 보이는 청와대를 향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 촛불이 번져 횃불로…야3당 지도부 다수 참여

이번 집회에는 횃불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횃불은 지난 5차 집회에서 간혹 눈에 띄긴 했지만 이번엔 조직적으로 손수 제작한 횃불까지 등장했다. 횃불을 직접 제작한 하다원(36)씨는 "횃불은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높은 분들에 대한 민심"이라며 "촛불이 횃불로 커진만큼 더 이상은 확대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고 말했다.

광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민들도 간혹 보였다. 이들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과 가벼운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만류로 더 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폭력은 집회의 본질을 변질시킨다"며 사전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횃불을 든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사진=KOPA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횃불을 든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사진=KOPA 사진공동취재단
오후 5시께 시작된 자유발언대에 참가한 시민들은 하나같이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쳤다. 한 고등학생은 "대통령은 국민의 말을 무시하면서 뻔뻔하게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우리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만큼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야3당의 국회의원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야3당 지도부는 일제히 박 대통령 퇴진 서명운동을 벌였다.

추 대표는 이날 촛불집회에서 "박 대통령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과 접촉해 겁박 또는 회유하는 것은 헌정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주최 측은 '1분 소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미로, 오후 7시에 맞춰 참가자들이 일제히 촛불을 껐다가 다시 켰다.
추 대표는 이날 촛불집회에서 "박 대통령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과 접촉하거나 겁박 또는 회유하는 것은 헌정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라며 힘주어 말했다. 사진=이진욱 기자
추 대표는 이날 촛불집회에서 "박 대통령이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과 접촉하거나 겁박 또는 회유하는 것은 헌정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행위"라며 힘주어 말했다. 사진=이진욱 기자
◆ 전국 각지에 최대 인파 집결…박사모 맞불집회도

서울뿐 아니라 부산,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도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부산에서는 주최 측 추산 22만명이 모여 박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고,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선 15만명이 참석해 촛불집회가 진행된 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 외 대전 5만명, 대구 5만명, 전남 2만명, 전주·울산 1만5000명, 제주 1만1000명 등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62만 명이 모였다고 주최측은 밝혔다.

박 대통령 퇴진을 반대하는 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도 이어졌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대연합' 소속 회원 3만명(주최 측 추산)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집회를 열어 박 대통령의 하야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보수단체 집회에서는 여성 인턴 성추행 의혹으로 물러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나와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을 지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종로3가까지 행진했고, 경찰에 막혀 광화문까지 행진하지는 못했다.

이날 집회에서 경찰에 연행된 사람은 없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시민들은 한데 모여 근심을 공유했고, 각자 입에서 한 목소리로 '하야송'을 불렀다. 사진=이진욱 기자
서로 일면식도 없는 시민들은 한데 모여 근심을 공유했고, 각자 입에서 한 목소리로 '하야송'을 불렀다. 사진=이진욱 기자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