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행동 "즉각 퇴진 촛불집회 열 것"…"탄핵안 처리 전 초점 흐리기"
보수단체 "막힌 정치국면 여는 통로"…"일단 지켜보겠다"


사건팀 =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대국민 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한 데 대해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은 '퇴진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맹비판을 이어갔다.

특히 이들은 이날 담화문에서 무책임한 모습이 계속됐다며 주말 촛불집회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담화 직후인 이날 오후 4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담화를 비판하고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이날 오후 7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를 '박근혜 즉각 퇴진 긴급 촛불집회'로 열고, 주말인 다음 달 3일 촛불집회도 '6차 박근혜 퇴진 국민행동'이 아니라 '박근혜 즉각퇴진의 날' 집회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거취 문제와 관련해 다 내려놓은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물러나겠다는 것이 아니라 버틴 것이라고 봐야 한다"며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데 대해서도 발뺌하고 있어 용납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진퇴 여부는 본인이 결정해야지 왜 국회에서 결정하는가"라며 "국회는 이미 탄핵소추안을 준비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진퇴 문제에 대한 국회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고 총장은 담화에 대해 "국회가 탄핵안을 처리하기 전에 초점을 흐리기 위한 수단으로 발표했다고 본다"며 "대통령으로서 책임지는 모습도 아니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또 한번 국민을 기만하고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본인이 주범이라는 것이 다 밝혀지고 더 심각한 범죄가 밝혀지고 있는데도 남 탓만 하고 있으면 누가 납득하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진퇴를 국회에 일임하겠다는 발언에 대해 "시간 끌기 꼼수라는 것이 너무 뻔하다"며 "더는 국민을 괴롭히고 나라를 큰 혼란으로 만들지 말고 즉각 퇴진하는 것만이 유일하고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국장은 "탄핵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발언을 통해 (탄핵에 대해) 준비할 여력을 마련하려는 것밖에 안 된다"며 "촛불집회 등 행동에는 변화가 없고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4·16연대, 공공운수노조, 한국청소년정책연대 등도 각각 일제히 성명을 내 이날 담화를 거짓 또는 기만이라고 규정하고 스스로 즉각 퇴진하거나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시민도 의견을 같이했다.

직장인 임현규(36)씨는 "조기 퇴진할 의향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일정을 제안해야지 일방적으로 국회에 일임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보여온 것과 마찬가지로 무책임하다"고 일침을 놨다.

직장인 이승기(31)씨도 "하야를 하겠다는 건지 탄핵을 받겠다는 건지 대통령으로서 최후의 결정마저도 남에게 떠맡기는 허수아비"라며 "'최순실 게이트'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단순히 주변 관리를 못 한 탓으로 돌리는 것도 뻔뻔하다"고 비판했다.

시민 김모(57·여)씨는 "오늘 담화에서도 다 주변 잘못으로만 돌리고 여전히 책임진다는 말이 없다"며 실망감을 표현했고, 직장인 김모(40)씨는 "담화를 듣고 이번 주말에 또 나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국민들 바쁜데 빨리 하야하든 탄핵하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신모(35)씨는 "국회에서 진퇴 문제를 결정하면 따르겠다고 하지만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이번 주에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모(27·여)씨는 "결국 본인이 온전히 책임지고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끝까지 없어 웃음이 나왔다"며 "탄핵을 하라는 건지 개헌을 하라는 건지 공을 또 국회에 다 넘기고 결자해지하는 모습이 없어 화만 돋웠다"고 말했다.

반면 보수단체는 박 대통령의 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는 담화에 대해 "막힌 정치국면을 여는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하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만큼 국회는 혼란을 수습하고 국정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협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담화의 핵심은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실장은 "하야는 법적 수단이 아니고 탄핵은 법적으로 보장된 수단"이라며 "국회 결정에 맡긴다는 것이 반드시 탄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로서는 입법부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으로 보고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추종단체인 박사모는 "모든 공이 국회로 넘어갔고 하야나 탄핵도 물 건너갔다"며 회원들에게 "흔들리자 말자"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 지지자인 주부 이모(55)씨는 "대통령이 하기 어려운 결정을 했다"며 "국회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결정을 존중하고 대통령 말처럼 하루빨리 정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정상궤도를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역시 박 대통령 지지자인 시민 김모(59·여)씨는 "그간의 일로 정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면서도 "오늘 회견은 정도면 대통령도 최선을 다한 것 아닌가 싶다. 하야의 뜻을 밝힌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박 대통령 담화가 발표된 시간 서울 삼성동 박 대통령 사저 주변은 한산했다.

사저 앞 경찰 2명이 경비를 섰을 뿐 지나다니는 행인은 많지 않았다.

주변 카페와 편의점에서 휴대전화로 담화 생중계를 보는 시민과 라디오로 담화를 듣는 노점상 주인이 눈에 띄었다.

인근 빌라에 사는 40대로 보이는 한 주민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개인적 인연이자 사사로운 사이인 최순실씨에게 너무 의존한 것은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60대로 추정되는 여성 주민은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밝히지 않은 데 대해 "지금 물러나면 혼란스러우니까 그런 것 같다"며 "하야하면 이 사저로 다시 올지 모르겠다. 아마 사람 없는 데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