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의료사고는 병원 동의 없이 분쟁 조정 절차
11월 30일 이후 의료 행위로 발생한 사고부터 법 적용


앞으로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병원 측의 동의가 없어도 의료사고 분쟁 조정 절차가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명 '신해철법'이 30일 시행된다고 29일 밝혔다.

신해철법은 의료사고로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자폐성·정신장애 제외) 등의 중대한 피해를 본 경우 의료기관의 동의 없이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분쟁 조정 절차를 시작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 소송은 환자 측이 승리하기가 어려워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자주 비유된다.

전문가인 의료진의 과실을 일반인 환자 측이 밝혀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소송에 걸리는 시간도 일반 소송보다 훨씬 길고, 비용도 비싸다.

그런데도 환자 쪽이 승소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이에 반해 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면 전문적인 위원들의 검토를 받아 최대 수개월 내에 훨씬 적은 비용으로 조정 절차를 마칠 수 있다.

조정의 효력은 법원의 판결과 같다.

신해철법 시행 이전에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중재 절차를 진행하고 싶어도 '가해자'인 병원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조사 자체를 시작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조정중재원에 접수된 조정 신청 가운데 절차가 시작된 경우는 43.2%(2012∼2016년 10월)에 불과하다.

신해철법에 따라 자동으로 시작된 의료분쟁조정절차를 병원 측이 방해하거나 불응하면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다만 의료사고를 조사할 때는 '긴급한 경우'나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7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또 진료방해, 기물파손, 거짓으로 조정신청, 의료인 폭행·협박 등의 사유를 제시하면 조정신청이 각하될 수도 있다.

신해철법은 시행일인 30일 이후에 시행된 의료 행위를 원인으로 발생한 의료사고부터 적용된다.

복지부는 "이 법 시행이 환자와 의료기관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부에서는 의료분쟁의 자동 개시 요건이 '사망', '중상해' 등으로 너무 엄격해 법 시행의 의미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개월 이상 의식불명이라면 식물인간 상태여야 하고, 장애 1급 판정을 받으려면 적어도 6개월, 최대 2년까지 걸릴 수 있다"며 중재 요건이 과중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안 대표는 "요건에 해당한다면 의료 소송을 위한 자금이 없어도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열렸다는 의미는 있다"고 평가하고 "다만 의료기관 측에서 민사 소송을 할 경우 환자 측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의료분쟁조정중재원 등의 상담을 통해 의료사고 가능성이 큰 경우에만 조정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신해철법'은 과거에 '예강이법'으로 불렸다.

예강이는 2014년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찾은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요추천자 시술을 받다 쇼크로 사망했다.

예강이의 부모는 딸의 사인을 밝히고 의료진의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의료조정을 신청했지만 병원 측이 조정을 거부하면서 기각됐다.

가수 신해철씨의 죽음 이후 의료사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예강이법은 '신해철법'으로 불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junm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