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교육부가 28일 국정 역사교과서의 초안 격인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건국절’ 표현이 빠지고 박정희 정부를 ‘독재’로 서술하는 등 논쟁의 ‘불씨’가 될 만한 사안을 가급적 배제하려는 흔적이 역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발전 과정을 상세히 다룬 것도 기존 교과서와 다른 부분이다. 고등학교 한국사에선 유일한, 이병철, 정주영 등 1세대 창업가를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기술했다. 하지만 새마을운동에 대한 내용이 크게 늘어나고 수출주도 경제 성장의 공(功)을 대부분 박정희 정부에 돌리려 하는 등 ‘박정희 대통령 미화’를 둘러싼 논쟁도 예상된다.
[베일 벗은 국정 역사교과서] "산업화·민주화 동시 달성" 서술 첫 교과서…'건국절' 논란은 재점화
평가보다는 사실 나열에 치중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헌법 가치에 충실한 교과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새 교과서에 대해 “무미건조하다”(김찬수 동원고 교사)고 할 정도로 평가보다는 사실의 나열에 치중했다고 분석했다.

독재에 대한 서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5·16을 ‘군사 정변’으로 표현하고, 이승만 정부에 대해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서술했다. 독재 미화 논란에서는 한발 비켜났지만 유신체제 비판 내용이 줄어들어 일각에선 독재의 폐해를 축소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친일파 서술은 기존 검정교과서에 비해 분량이 줄었을 뿐 평가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기술한 부분에 대해선 역사학계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새 교과서는 기존 검정교과서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 표현을 각각 ‘대한민국 수립’, ‘북한 정권 수립’으로 명기했다. 이 부총리는 “1948년 8월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됐음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진보 성향의 학자들은 “친일 세력까지 건국 공로자로 인정해 친일파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친기업 역사교과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라는 관점을 편찬 기준 중 하나로 삼은 점도 이번 국정 역사교과서의 특징 중 하나다. 재계에선 “정치적 논쟁을 배제한다면 산업화 과정을 가장 중립적으로 표현한 역사교과서”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중학교 역사’는 냉전 종식 후 정치와 경제를 다루면서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룩한 국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썼다.

친(親)기업적인 서술도 기존 교과서와의 차별점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에 대해선 “1980년대 반도체산업에 투자해 한국이 정보기술산업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고 적었다. 정주영 현대 창업자는 “대규모 조선소 건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영국 투자은행에 보여주며 ‘우리는 이미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대기업 회장이 역사교과서에 실명으로 등장한 사례는 드물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일 전망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260쪽에서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은 농업에 우선순위를 둔 데 비해 (장면 정부를 무너뜨린) 5·16 군사정변 주도세력은 공산품의 수출을 주요 추진 전략으로 삼아 장면 정부 안과 차이가 있었다’고 서술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5·16 군사정변 덕분에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이 가능했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정교과서 집필 위원 31명 명단

◆선사/고대=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성락 목포대 고고학과 교수, 서영수 단국대 명예교수, 윤명철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교수, 우장문 경기 대지중 수석교사

◆고려=박용운 고려대 명예교수, 이재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고혜령 문화재청 문화재 위원, 김주석 대구 청구고 교사, 유경래 경기 대평고 교사

◆조선=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 이상태 국제문화대학원대학 석좌교수,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정일화 前 강원 평창고 수석교사

◆근대=한상도 건국대 사학과 교수,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 소장,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최인섭 충남 부성중 교장

◆현대=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황정현 충남 온양한올중 교사

◆세계사=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 정경희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윤영인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황진상 서울 광운전자고 교사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