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통성 부각" vs "독립운동 부정·친일 미화" 뜨거운 논란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될 내용 중 하나는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와 관련한 것이다.

현장 검토본은 예상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현행 교과서 속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했다.

진보진영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정부'라는 단어 하나가 빠진 것뿐인데, 왜 그렇게 큰 논란이 되는 것일까.

◇ 교육부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국가 정통성 강조"
교육부는 현장 검토본과 함께 배포한 '대한민국 수립 Q&A' 자료에서 "오랜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한민국이 완성됐음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의 긍지를 일깨워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1919년 3·1 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 광복을 거쳐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완성됐는데, '국가의 완성'의 의미로서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 8월15일에 정부가 수립되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국가가 완성되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특히 "기존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북한에서는 조선 민주주의 인문 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며 "대한민국은 수립, 북한은 정권 수립이라는 표현을 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 용어가 이미 예전 교과서에서 사용되던 표현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1차 교육과정(1956년)부터 7차 교육과정(2009년)까지 시기의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수립' 용어가 사용되다가 그 이후 '정부 수립' 용어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는 Q&A 자료와 함께 김철수 서울대 헌법학 교수의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도 참고 자료로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김 교수는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삼아야 한다는 사람들은 주로 진보 세력인데, 그들은 현재의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이며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정통성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국가론에 입각해 실질적 건국으로 인정하려면 영토, 국민, 주권의 요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1919년의 임시정부는 그 중 어느 것도 갖추지 못한 망명정부였다"고 지적했다.

◇ 진보진영 "1948년에 대한민국 세웠다면 독입운동사는 의미 없는 것"
교육부는 단순한 '행정부 수립'이 아니라 '국가의 완성' 개념에서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씀으로써 국가 정통성을 부각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결국 1948년 8월15일을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이다.

진보진영에서는 1948년 8월15일을 건국시점으로 본다면, 1919년 3·1 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이후 벌어졌던 독립운동 역사를 모두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영토, 국민, 주권 등 아무 권리가 없는 망명정부에 불과했다고 폄하한다면, '권리가 없는 나라에서 권리를 주장한 독립운동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볼 때도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을 건국 시점을 보는 게 맞다"며 "뉴라이트가 건국절의 본보기로 삼는 미국의 '인디펜던스 데이'(1776년 7월4일) 역시 독립 기념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독립운동사를 부정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논리는 뉴라이트가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을 비롯한 친일세력의 과거 행적을 지우기 위한 의도라는 게 진보진영의 시각이다.

보수진영에서 건국절 주장이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것도 뉴라이트의 대표적 학자이자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불린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2006년 한 신문에 기고한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제목의 칼럼이 계기가 됐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상권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을 '건국 60주년'으로 명명하고 대대적 기념 행사를 열면서 건국절 제정 움직임이 정부 차원으로 격상됐다"며 "이번 국정 교과서는 그간 뉴라이트가 펼쳐온 10여년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라고 주장했다.

건국시점을 언제로 할 것이냐의 문제는 한반도 분단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서로 다른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승만이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것에 대해 진보진영은 결국 남과 북이 나뉜 채 분단을 고착화하며 '불완전한 탄생'을 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 진영은 분단이 확정된 1948년을 건국 시점을 보는 것은 결국 분단을 기리는 의미도 지니게 되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예전 교과서에서도 '대한민국 수립' 표현을 써왔다는 교육부 주장에 대해서도 진보 진영은 "그 때까지는 사실 큰 의미없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을 혼용했던 것이고, 지금의 뉴라이트는 의도를 가지고 '대한민국 수립'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